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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꽃 Nov 04. 2024

어둡고 아프다 그래도 성장한다 <소금아이>

독서하기 딱 좋은 사춘기 15 <경우 없는 세계> 함께

이수라는 아이는 섬에서 할머니랑 산다. 엄마는? 죽었다.

그럼 할머니는? 친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아니다. 이수의 엄마의 남자의 엄마다.

 

여기까지는 허랑하게 살다 간 어미의 자식의 복잡하게 꼬인 가족사로 읽힌다. 핏줄 하나 안 섞였지만 어쩌다 보니 남은 자들이 함께 서로 기대며 살아간다는 이야기? 요즘은 이렇게 유사가족이랄지, 외롭고 쓸쓸한 이들이 가족처럼 얽혀 사는 이야기가 많다. 처음엔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다.     


처음엔 그저 불쌍한 아이 이야기인 줄

처지가 불우한데다가 학교에 가면 괴롭히는 못된 녀석도 있고, 그런 와중에 우야든동 씩씩하게 크는 주인공.... 뭐 이런 이야기인 줄 알았다. 청소년 소설이라기엔 칙칙한 분위기에 문학적 서술들은 요즘 청소년 소설에 비해 어둡게도 느껴졌고. 다만 매력적인 것은 제목이었는데, 한때 노래방에서 많이 불렸던 노래 <소금인형>이 떠올랐다고나 할까. 물론 안치환의 소금인형처럼 매몰된 사랑의 처절함을 다룬 소설은 아니었다. 그저 개인적으로는, 한때 바닷가에 살던 시절 철저히 외로운 서울내기 자취생을 위해 언니처럼 포근하던 그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그이가 노래방에서 부르던 가사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가 떠올랐을 뿐. 그런데 바다 – 외로움 – 처절함의 정서가 안치환의 노래 – 이희영의 소설 – 나와 그이가 살았던 강원도 바닷가의 분위기와 어딘가 닿았다고나 할까......     


녹아사라지는 소금인형처럼, 아픔에 절여진 소금아이처럼

아니아니아니, 이렇게 샛길로 가서야... 다시 소설로 돌아와, 소설의 주인공은 외로운 고등학생 이수. 그런데 그 아이를 거두어준 할머니에게는 무서운 소문이 따라다닌다. 사실은 수년 전 이수가 어렸을 때 이수의 엄마와 그의 남자 즉 할머니의 아들은 살인사건에 휘말려 죽었다. 사람들은 남자가 이수엄마를 죽였고, 둘을 말리는 과정에서 할머니가 자기 아들을 찔렀다고, 그리고 남은 꼬마 이수를 거두었다고 알고 있다. 이것만 놓고 보아도 처절하고 기구한 삶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반전이 있다.     

그 반전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아무렴, 아무리 자기 아들이 개차반이어도, 아무리 사람을 찔러 죽였어도, 아무리 드잡이 하다가 그랬다 해도, 아무리 실수였다 해도 자기 아들을 찔렀을까,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의심은 또 하나의 축이되, 주인공 이수는 청소년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답게 단단한 내면을 망망대해 같은 고난의 세상과 세월에 띄우고 어떻게든 살아간다. 힘겨워도 사람다움은 잃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손가락질받는 아이, 무서운 죄를 짓고 여기까지 밀려왔다는 소문 속의 세아가 이수 곁을 지킨다. 작가는 소위 ‘죄지은 자’들의 이면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진실은 언제나 현실과 맞닿아 있다. 무거워서 읽기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중1 남자아이들이 이 소설을 읽어낸다. 추리와 반전? 인간극? 성장소설? 그 무엇이라도 좋다. 때로 우린 이렇게 외롭고 무거운 소설을 읽어야 한다.   


경우 없는 세계          

극단적으로 아픈 이야기도 싫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늘 해피엔딩인 권선징악의 세계도 싫다. 아니, 나는 그냥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소설은 열심히 읽는다.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어쩔 수 없이 읽어야만 한다. 특히 ‘소설 읽고 노래가사로 재구성하기’라는 수행평가를 하려면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가지고 들어가는 50여 권의 소설(해마다 업그레이드된다)의 내용을 내가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 책 소개를 할 때 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하고 대화를 나눌 때 소설 속 상황을 잘 알아야 흥미를 지속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평가를 할 때 ‘소설의 내용이 노래 가사에 잘 반영되었는지’ 알려면 내가 당연히 소설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 학교 도서실 사서 선생님은 이런 나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 나온, 혹은 새롭게 발굴된 좋은 청소년 소설을 권한다. 다른 책을 한 아름 빌려가는 내 손에 지난가을 덥석 쥐어준 책이 이 <경우 없는 세계>이었다. 작가의 이름이 낯익다. 화제작이라 하여 읽은 <유원>의 작가 백온유다.     

청소년 소설에는 남자 청소년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별로 없다. 실제로 책을 읽는 비중도 여학생들이 많고 쓰는 이도 그러하다. 젊은 남자들의 서사는 게임의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있나 보다. 전작 <유원>도 대단한 서사와 문체로 쓰이긴 했지만 여성 청소년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니 좋은 작품이되 우리 학생들에게 읽히기에는 딴 세상 이야기 같았다. 그랬던 경험 때문에 작가 이름을 보고 머리에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할까?) 물음표를 달고 읽기 시작했다. 주로 출퇴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하는 날 책을 읽는데, 두 번째 책을 들고 나온 날엔 길지 않은 정거장을 놓칠 뻔했다. 책 속 이야기, 치밀하고 처절하다. 시작할 때 펼쳐지는 피폐해진 쓸쓸한 청년의 아픈 이야기가 ‘고통스러운 서사’가 읽기 싫어 소설을 멀리하는 내게 또 불편한 마음을 준다. 그러나 그가 자동차 자해 공갈단이 된 한 청소년을 거두는 이야기에서부터 열심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가출 청소년 이야기를 왜 쓰고 싶었을까? 작가의 어떤 경험치가 그런 주제 의식에 맞닿았을지 궁금해하다가 나 역시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도대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안타깝고 궁금한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해마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떠난다

비교적 평화로운 우리 학교에도 한 해 한두 학생씩 불편한 유예(의무교육인 중학교 교육을 마치지 못하는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면 ‘자퇴’가 아닌 ‘유예’가 된다.)가 발생하는데 그렇게 학교를 떠나 어지간해서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정말 궁금하다.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아주 드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아무도 그들의 소식을 모른다. 소식이 들려온다 한들 소년원에 갔다. 보호관찰 중이다, 정도이다. 전국에서 한해에만도 수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는데 그중 대다수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거나 돌봄에 방치되어 범죄의 길에 발 담그는 경우, 혹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경우다. 그 학교밖 청소년들에 대한 걱정이 나를 사로잡은 것처럼 백온유 작가도 가출한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그들의 내밀한 삶과 상처는 무엇인지 고민했었나 보다.     


뒤에서 가만히 잡아주던 손 하나

가출의 이유도 다양하겠지만 주인공처럼 얼핏 안정적으로 보이는 가정에서도 청소년의 등을 떠미는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경우처럼 어떻게든 올바르게 살아내려 애쓰는 아이들도 많겠지만 본의든 아니든 일탈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일이 더 많다. 이 책은 그런 아이들의 핍진한 세상을 집약해 보여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사람답게 살아내려는 아이 하나는, 부모에 대한 원망과 세상에 대한 절망으로 아무렇게나 막살아버리려는 주인공 인수의 손목을 잡는다. 인수가 나빠지려 할 때마다 뒤에서 가만히 잡아당겨 주던 경우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을 때, 홀로서기를 애쓰던 인수는 거리를 떠도는 이호를 자신의 옥탑에 이끌어 먹이고 재움으로써 경우의 역할을 대신한다. 이호에게 더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말라고, 그래도 네 곁에 다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알려주려 애쓴다. 어쩌면 그런 힘들이, 그런 손 하나가 우리가 아이였을 때 우리가 더 불행해지지 않도록 막아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 많은 나쁜 것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좋은 사람만으로도 세상은 살아지고 나는 더 나빠지지 않기도 하고 그런다. 그걸 보면 착하고 좋은 것은 얼핏 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을 지탱하는 정말 힘센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경우처럼, 그리고 이제 인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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