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꽃 Nov 02. 2024

현실 고증 쩐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독서하기 딱 좋은 사춘기 14 <모범생의 생존법> 함께

오래전에 읽은 책들이지만 브런치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청소년 소설들을 읽고 있다. <체리새우>는 어떤 내용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처음 읽는 책처럼 신선한 기분으로 읽었다. 왜지?    

내가 여자아이들이 등장하는 책은 좀 소홀히 읽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우리 남자중학생들이 재미있어할까, 걱정을 좀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교실에서는 이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는 아이들이 많아서 의아했던 것 같다. 그러니 신선한 기분으로 다시 훑어보자! 

‘듀오링고’라는 앱으로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중간에 광고가 많다. 기다리는 동안 소설을 읽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역시 나는 멀티 플레이어야~! 이러면서. 어머, 그런데 웬걸? 이 소설 왜 이렇게 재미있지? 나중에는 휴대폰을 던져놓고 열심히 읽었다. 최근에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은 소설들이 다 그랬다. 몰입도가 대단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청소년 소설은 일단 쉬운 문체와 재미를 갖추지 않으면 선택되기 어렵기에 재미있게 읽힐 수밖에 없다. 게다가 황영미다. 재미없을 리가 없다.



청소년 소설 너무 재미있다!

다현이라는 명랑한 소녀가 주인공이다. 성격도 좋고 나약하지도 않은데 그녀에게 왕따(은따?)의 이력이 있다니 의외다. 하긴, 이맘때 아이들은 서로 돌려가며 왕따를 시키기도 한다.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끔찍하고 극단적인 왕따가 아니라 교묘하고 애매하게 만연된 왕따 문화가 있다. 어른들도 헷갈리고 자기들도 헷갈릴 만큼. 증상은 애매한데 내상이 깊은 게 왕따랄까. 잠시, 약하게 ‘따’를 당했다 해도 그런 경험을 한 아이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산다. 요즘 젊은이들은 안 그래도 이래저래 힘든데 왕따 문화가 만연한 사회를 관통해 살아가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증거를 수집해 본 적은 없지만 한 번이라도, 잠시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적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 하면 꽤 많은 아이들이 손들지 않을까?     


명랑한 다현이가 왜 왕따를?

책을 읽으면서 다현이가 왜 왕따를 당했었을까 생각해 봤다. 다현이는 말이 좀 많다. 하지만 그건 다정함과 솔직함의 반증일 수 있다. 아이들은 ‘그냥’ 다현이의 작은 약점을 갖고도 싫어했던 것이다. 그건 주인공 다현이뿐 아니라 그들 무리가 싫어하는 1호, 2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인싸라서,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않아서, ‘진지충’이라서, 별 이유가 다 있다. 그러고 보니 1980년대 내가 다니던 여고에서 왕따를 당하던 아이가 생각난다. 그 애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걘 말도 거의 안 하고 아무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그 아이를 싫어하고 괴롭히느냐고(괴롭힌다는 게 말 안 걸고 째려보는 정도이긴 했지만). 이유가 웃겼다. 교복자유화 시대라 다들 사복을 입고 오는데 그 앤 맨날 교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왔다, 다른 애들이 몰래몰래 커트도 하고 핀컬 파마도 하고 오는데 그 앤 까만 칼단발을 하고 다닌다.... 심지어 어떤 애는 “걔한텐 맨날 치약 냄새가 나. 그게 짜증 나!”라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참....     

다현이는 몰려다니던 무리에서 서열이 가장 낮은 듯 보인다. 우리 학교에도 그런 아이들, 그런 동아리가 많다. 둥그렇게 모여있는 무리에서 늘 제일 밖에 서있고 노래방엘 가면 돈도 제일 많이 내고 담배 피울 때 망보는 역할을 하는 아이가 죽어도 그 무리에서 떨려나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외롭기 때문이다. 남자아이들은 그 동아리가 권력이 되기도 하고(여자아이들도 그렇겠지). 

    

왕따가 ‘문화’인 시대

하지만 다현이는 시새워하고 친구를 이용하고 이유 없이 다른 아이를 미워하는 그 동아리 (다섯 손가락이란다, 동아리 이름이)를 서서히 빠져나온다. 물론 새 친구도 사귄다. 하지만 다현이가 선택한 건 다른 동아리로 갈아타기가 아니다. 글을 쓰면서 자기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하는 것. 그리고 그런 자존의 세계를 가진 다른 친구들과 ‘따로 또 같이’ 친구가 되는 것. 그러니까 사춘기 아이들 특유의 친구 아니면 죽고 못 사는 단계를 지나 내적으로 성숙해 가며 상처를 이겨내는 것이다. 이 소설은 사춘기의 정서적 성장을 자극적인 사건 없이 보여준다. 아름이라는 아이가 못된 아이라 다현이를 함부로 대했다, 는 선악구도로 빠지지 않으려 작가가 애를 썼기에 소설 속 아이들 세계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괴롭히는 아이도 괴롭힘 당하는 아이도 대부분은 보통 아이들이다. 좋은 세상 속에서는 누구나 자기 안의 좋은 인성을 톺아올린다. 반면 모두가 반목하고 경쟁하고 물어뜯는 세상에서는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는 줄 알고 모두 악마가 된다. 이 소설은 청소년이 내면을 성장시키며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고 성장한 이야기를 담고 있긴 하지만 한편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좋은 사람으로 자라게 하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모범생의 생존법>

근심 없는 집 없고 불안감 없는 사춘기 없으리라. 공부 잘하는 모범생들이라고 행복하기만 할까? 외적인 조건이 완벽해도 심리적으로 완벽히 행복한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우리의 주인공 ‘준호’는 모범생이지만 이 친구에게도 고민과 고통은 있다. 고등학생들이 겪어야 할 배치고사, 야간자율학습,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 모의고사, 봉사 활동, 동아리 활동 이야기가 나오고 이 가운데 성적과 진로, 그를 둘러싼 시기와 미움이 들락날락한다. 개개인의 가정사까지. 그런 이야기들을 빼고도 공부 좀 한다 하는 중학생들이 읽으면 공감할 만한 학업 스트레스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목차가 재미있어 소개해 본다.

1. 이름이 불려도 당황하지 않기 … 7

2. 강풍을 대비하기 … 24

3. 빌런의 등장에 흔들리지 않기 … 42

4. 떡볶이는 먹고 가기 … 56

5. 골고루 망쳤을 땐 일단 한숨 자기 … 68

6. 도저히 안 될 땐 과감히 투항하기 … 81

7. 패배에 대한 맷집을 기르기 … 94

8. 내 앞에 놓인 일들을 그냥 하기 … 108

9. 메뉴가 별로인 날은 건너뛰기 … 124

10. 기운 없는 친구에겐 죽을 건네기 … 136

11. 밖으로 끄집어내기 … 152

12. 드넓은 바다를 상상하기 … 166

13. 고양이인가 싶을 때 다시 보기 … 181     



그래, <체리새우>의 다현이도 그랬지만 준호도 맑고 밝다. 우리 어른들이 지금 청소년기를 산다면 견뎌낼 수 있을까 싶게 숨 막히는 삶을 살아도 이렇게 잘 버틴다. 현실의 우리 아이들 대부분도 이렇다. 약하지도 않고 의연하지도 않지만 내면에는 밝은 에너지들을 갖고 있는 '보통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잘하면 된다. 우리, 어른들만 잘하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