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기 딱 좋은 사춘기 13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함께
반전은 매력적이다. 독자에게 범인은 이 사람이다, 거의 확신을 심어 주다가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나쁜 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속 깊은 사람이었다는 정도의 반전, 좋은 사람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연쇄 살인범, 이런 반전은 드라마에서도 많이 보긴 했다. 그 익숙함 때문에 혹시~? 이러면서 보게 된다. 그래서 요즘 작가들은 아예 처음부터 다른 분위기로 시작한다. 명랑하고 착한 청소년 소설인가 보다, 방심하게 만들었다가 반전을 시도하기도 한다.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범죄 추리물들이 드라마 영화뿐 아니라 청소년 소설에까지 퍼져 범인이 누구인지 추정하고 추적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벙커>의 반전은 색다르다
추정경의 <벙커>는 제목이 낯설었다. 우리 아이들이 '벙커'를 알까? 남자아이들이니까 이 정도 군사적 용어는 알려나? 그런데 청소년 소설에 벙커가 등장할 일이 무얼까?
주인공 김하균은 교실에서 미운 짓만 골라하는 아이다. 비열하고, 겉돈다. 잠시, 비열한 게 더 나쁠까, 겉도는 게 나쁠까? 어른들은 전자를, 아이들은 후자를 꼽는다. 학교 교실에는 비열하지만 아이들하고 잘 지내는 아이들이 있다. 교실의 도덕은 옳고 그름에 좌우되지 않고 영향력(권력)이 있는가 없는가에 휘둘린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다 싫어하는 행동을 도맡아 하는 하균이는, 교실에서 ‘나쁜 아이’인 것이다.
어느 날 교실에서 싸움이, 아니 다툼이 일어난다. ‘나쁜 놈’ 김하균은 아이들에게 응징을 당한다. 아이들이 힘을 합쳐 나쁜 아이를 응징하는 일은 좋은 일일까, 아닐까? 르네 지라르가 말한 ‘나빠야만 하는 놈'은 아니었을까? 하여간 그 응징의 과정에서 다친 서술자 ‘나’와 하균은 그렇게 응급실에 같이 간다.
벙커, 거긴 어디였을까, 현실이긴 한가?
그리고 ‘나’는 한강 다리 아래 벙커로 오라는 문자를 받고 그곳에 간다. 무슨 아지트 같은 곳에서 이상한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김하균’이란 아이에 대한 이해와 오해가 오고 간다. 늘 그렇듯 청소년 소설에는 불행과 불량을 집약해 놓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불행에도 불구하고 순정한 영혼을 간직하거나, 혹은 불행에 몸을 맡겨 불량해지지만 그걸 그의 탓이라 말할 수 없는 삶을 살거나. 하균도 그런 아이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하균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벙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
여기까지는, 이런 사연은 다른 청소년 소설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공감하고 이해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소설이라 하겠지, 하지만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은 맨 마지막에 있다. 반전. 너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이길래 그토록 미워했던 김하균을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보는 것일까?
가끔 우리는 내가 나 아닌 누군가라면, 생각할 때가 있다. 꿈속에서는 나를 내가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 분리, 혹은 해리는 기괴하면서도 나를 달리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쩌면 생각보다 괜찮은/나쁜 사람일지도 모른다’며 객관화를 하게도 된다. <벙커>는 그런 ‘사유의 과정’을 소설로 보여준다. 대단한 소설이다. 게다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두 번째 읽으면서 느낀 건데, 하균을 응징하는 학급 아이들의 모습도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어떤 시각에선 이것을 못된 아이 하나와 맞서는 민주적인 힘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온 집단이 힘을 모아 한 사람을 희생양 삼는 일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학교에서는 더욱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선과 악은 종종 뒤집히고, 강한 것은 선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런 ‘진실’에 대한 의문도 이 소설의 반전은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이꽃님은 가히 청소년 소설계 황비이다. <죽이고 싶은 아이>보다 앞서 나온 이 작품의 재미도 만만치 않다. 기구한 사연의 한 소녀가 과거의 소녀와 편지를 주고받는 이야기이다. 물론 처음에는 과거와의 소통이라고 상상도 못 했다. 대학생들이 데모를 한다는 둥 자꾸 엉뚱한 과거의 고증은 재미있다.
고민도 털어놓고 마음을 주고받는 이 소녀는 도대체 누구이길래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걸까. 과거와의 소통은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일본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타임슬립만큼 비과학적인 이야기지만, 누구나 한 번쯤 과거의 비밀을 캐기 위해, 혹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것이 가능한 일이기를 꿈꿔보지 않는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은유(이 소설의 주인공 소녀)는 어마어마한 사람을 편지를 통해 만난다. 그리고 진실도. 물론 그 반전은 소설을 한참 읽어야만 얻을 수 있다.
감동이 함께 하지만 소녀가 주인공인 이 섬세한 소설을 소년들도 과연 좋아할지 궁금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중학교 수업은 45분. 뒤의 5분~ 10분 정도에 독후활동을 해야 해서 그만 읽으라고 할 때까지 아이들은 코를 박고 책을 읽는다. 내 아들이 책에 빠져 열심히 독서하는 그런 모습 보고 싶으신가? 나는 학교에서 자주 봤다. 그리고 당신들 대신 많이 행복했다. 저느무자슥들이 복도에서 쌍욕을 하고 친구 발을 걸고 어퍼컷을 날리는 모습을 보며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날릴 정도로, 책을 읽는 소년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뭉클하다. 그 힘으로 여태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