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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꽃 Dec 19. 2024

할마빠와 자연이 함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독서하기 딱 좋은 사춘기 22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둑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계셨다. 벌써 메기 한 마리를 잡으신 후였다. 나는 물고기 구멍을 찾아내지 못해서 둑 아래쪽으로 약간 내려갔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울뱀이었다. 몸을 둘둘 말아 똬리를 틀고 앉은 그놈은 머리를 바짝 치켜세운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얼굴에서 불과 15센티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은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와 뱀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날름거리며 내미는 독 오른 혀는 거의 내 얼굴에 닿을 지경이었고, 가늘게 찢어진 그 눈은 빨갛고 징그러웠다. 

  갑자기 마주 보고 있는 나와 뱀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할아버지는 마치 날씨 이야기라도 하는 것 같은 낮고 부드러운 말투로 가만히 말씀하셨다.


  “고개 돌리지 마라. 움직이지도 말고. 눈도 깜박이면 안 된다.”

  나는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공격준비를 다 같춘 뱀의 머리가 더 높이 쳐들렸다. 그때였다.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번개처럼 내 얼굴과 뱀의 머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 손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만일 할아버지가 손을 움직이거나 움추린다면...... 뱀은 내 얼굴을 정면으로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뱀은 눈 깜짝할 사이에 칼날처럼 강하게 공격해 들어왔다. 아귀처럼 벌어진 입이 할아버지의 손을 절반 정도 물었을 때, 날카로운 어금니가 살 속에 깊이 박히는 모습이 내 눈에 선연히 들어왔다. 순간 할아버지는 다른 한 손으로 뱀 대가리 뒤쪽을 붙잡고 있는 힘을 다해 죄었다. 딸랑거리는 꼬리 끝이 할아버지의 머리와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하지만 마침내 뱀의 등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투둑 하고 들렸다.


할아버지는 땅바닥에 앉으시더니 재빠르게 긴 칼을 꺼내 물린 상처가 있는 손바닥에 대고 한 일자로 그었다. 칼로 벤 곳에서 피를 빨아내 땅바닥에 뱉어내는 일을 계속하셨다. 할아버지는 얼굴 모양이 이상하게 변해가고 두 팔도 시퍼렇게 변하고 있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올게요.” 다급하게 말하고 나는 길을 달려 내려갔다. 발이 땅에 닿는 느낌 말고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할머니를 모시고 할아버지에게 돌아와 보니 할아버지의 물린 팔은 이제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할머니는 인디언 치마를 벗어 아랫단 쪽으로 돌멩이를 싸서 묶더니 메추라기 둥지 쪽으로 다가갔다. 메추라기가 둥지 위로 날아오르는 순간, 할머니는 치마를 투망삼아 메추라기에게로 내던졌다. 살아있는 메추라기를 가슴부터 꼬리까지 갈랐다 그러고는 그놈의 몸을 벌려 할아버지의 물린 상처에다 꼭 눌렀다. 할머니는 몸부림치는 메추라기를 할아버지 손에 댄 채 한참 동안 붙들고 계셨다. 나중에 떼어내 보니 메추라기의 뱃속은 온통 새파란 초록색으로 변해 있었다.             

            

중2 학생들과 국어시간에 듣기평가를 하거나 책 읽기를 할 때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저 대목을 들려준다. 숨 죽이고 듣던 학생들에게 "그래서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질문을 던지고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여기까지, 책 좀 팔아본 영업사원의 수법이다. 여태까지 잘 먹혔다. 다른 책에 비해 제법 두꺼운 편인 이 소설을 읽다가 포기할지라도, 일단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 책 안에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고 자연을 섬세하게 묘사한 문체가 있고 인디언 수난사에 대한 고찰이 있으며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 심리적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심리학적 자기 강화 프로그램’이 있다. 성장소설이며 감성소설이고 잠언이며 자연과학소설이기도 하다. 책의 앞 절반은 주인공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자연에서 행복하게, 인디언식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독자가 마치 아메리카의 대자연을 직접 살아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


내 영혼을 허공에 띄우는 '자기 객관화' 

하지만 주인공 ‘작은나무’는 곧 미국의 ‘인디언 보호정책’에 의해 억지로 공교육의 현장에 ‘구겨넣어진다’. 이것은 미국 정부의 주장대로 빈민, 혹은 양육자의 무지로부터 정부가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육의 혜택을 주려 한 것이라기보다 인디언 유민(!)들을 사회적 방랑자로 만들지 않기 위한(즉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봐야 한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학교에서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인디언(3세)이라고 악마의 자식 취급을 당하며 인간의 존엄을 짓밟힐 때 주인공 작은나무가 그 '몸의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은 도망치는 것도, 저항하는 것도 아니었다. 매질을 당할 때면 영혼을 허공에 띄워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본단다. 그러면 고통이 좀 덜해진다면서. 할머니의 집이 그리울 때면 늑대별이 뜰 때 자신의 영혼을 허공에 띄워 그리움을 달래는 장면도 비슷하다.    



이 책은 이제는 결국 세상에서 소멸하다시피한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들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자연을 벗 삼아 가장 인간적인 본질을 움켜쥐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참혹하게 터전을 빼앗겨야 했던 그들. ‘어떻게 하늘과 땅을 사고 팔 수 있단 말이냐고, 자연에 주인이 어디 있느냐고’ 유럽에서 온 침략자들에게 일갈하던 인디언들. 바람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으며 공동체를 중시하던 그들, 죽은 이의 영혼과 두려움 없이 공존할 수 있었던 그들의 정신적 세계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잘 담겨 있다. 


영혼도 단련이 된다면 

‘인간의 영혼은 몸의 근육처럼 키울 수 있다. 노력하고 갈고 닦으면 영혼은 점점 커진다. 하지만 나쁜 짓을 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그의 영혼은 점점 작아져 마침내 사라지고 만다’고 인디언들은 믿었다. 

우리는 남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라 부른다. 영성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건지. 있다면 어디로부터 오는지, 타고 나는 것인지 기를 수 있는 것인지, 이런 것들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채우고 키우고 단련하고 더 좋게 발전시킬 수 있는 ‘영성’ 혹은 ‘인격’, 적어도 ‘철학적 태도’는 분명히 있으리라. 나쁜 짓의 유혹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지금 네가 한 행동은 작은 실수라 치고 이제부터 네 마음을 좀 더 아름답고 단단한 것으로 키워나가려 노력할 수 있다.’는 말을 들려줄 때도 이 책은 유효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좋아서 번역이 좋은 건지 원작이 좋은 건지 궁금했다. 그렇게 원서를 사서 오랜 시간 걸쳐 읽었다.  이후로도 명문장의 책들을 만나면 원서를 사곤 하다 보니  <마틸다>, <더 리더>, <미 미포 유>, 나아가 지금 읽고 있는 <창백한 푸른 점>까지, 더듬거리면서라도 읽는 영어 원서의 권수가 늘었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조너선 코졸의 <교사로 산다는 것> 등 아직 엄두도 못 낸 책들이나마 책꽂이에 꽂혀 있다. 하지만 원서 읽기의 시작은 바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바로 이 책이었다. 그만큼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너무나 강렬했던 것이다.


+ 이 책에 붙은 혐의

하지만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심각한 논란이 있다. 저자는 인디언 3세도 아니며 책 속 내용도 사실이 아니라는, 오히려 그는 백인우월주의자였다는. 이미 다 밝혀진 진실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러한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KKK단 핵심인물이 백인우월주의에 입각한 인디언 정책(책 속에는 인디언 수난사도 나오는데)을 비판하는 글은 왜 썼는지, 이렇게 맑은 글을 쓰는 사람과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동일인물일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나는 작가의 삶과 작품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갓 들어가 서정주의 정치적 실체를 알고 그의 작품을 버려야 하나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이 책 작가에 대한 논란을 접했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솔직히 말하면 그 설들이 다 거짓이기를 바라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내 마음에서 놓아버리고 싶지 않다. 아직 더 많은 청소년들에게 읽히고 싶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그런 논란을 감추고 책만 미화하는 글을 전하고 싶지 않아 작가에 관한 논란을 덧붙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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