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꽃 Dec 13. 2024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고 믿어보자) <불편한 편의점>

독서하기 딱 좋은 사춘기 21 <순례주택> 함께

이것은 청소년 소설이 아니었던가?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따뜻한 표지와 제목에 끌려 책을 샀다. 지하철에서 읽어보고 재미있으면 학생들에게 읽힐 요량으로 외출할 때 챙겨갔다. 첫 번째 장에서 주인공 두 사람이 잃어버린 파우치로 만나는 것을 보고, 어머, 이거 우리 남중딩들도 재미있게 읽겠네, 게다가 훈훈한 내용이기까지......  그런데, 웬걸? 읽다 보니 청소년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공시생, 자식 때문에 고민하는 중년 아줌마 혹은 할머니, 노숙자 등등 청소년의 삶과 아주 거리가 먼 사람들만 등장한다. ‘사람 좋아 보이는’ 할머니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이며 또 하나의 주인공인 독고 씨를 발탁한 염할머니는 퇴임한 역사 교사다. 사람 좋은 염할머니, 현직일 때 일탈 학생깨나 바로잡았을 뿐 아니라 알콜성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독고 씨를 갱생의 길로 이끈 이 멋진 할머니는 정작 자기 자식 교육에는 실패한 듯 보인다. 천하에 나쁜 이 아들은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편의점마저 빼앗으려 했으니, 염할머니의 선행은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하여간 결론은 이 책이 청소년 소설은 아니라는 거다. 물론 청소년들이라도 다 청소년 소설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에 초등 중저학년 여학생들은 분홍색과 인형 캐릭터를 좋아할 거라는 게 있다. 많은 여자 어린이들이 이미 분홍색은 유치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어른들은 모른다. 그처럼 청소년 소설, 억지로 읽으라니까 읽을 뿐일 수도 있다. <나미야 잡화점>이 인기가 있는 게 거기 자기들 닮은 불량한 젊은 남자들이 등장해서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책 상자에 담아 가 열심히 책소개를 했다. "여러분, 여기 청소년은 등장하지 않아, 하지만 한 노숙자 아저씨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요저요, 책을 가져가겠다고 난리다. 그리고는 얇지도 않은 책을 순식간에 읽는다.     

무조건 해피엔딩

현실은 냉혹하지만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을 사랑한다. 이렇게 현실감각이 없어서야, 싶으면서도 덜 까칠하고 덜 냉소적이고 덜 위악적인 소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이 소설도 그런 목록에 들어갈 것 같다. 

요즘 많이 팔리는 소설의 공통점들을 생각해 본다. 청소년 소설만도 아니지만 청소년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미있고 쉬워야 한다. <아몬드>가 그랬고 <구미호 식당>이 그랬으며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그랬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을 반영하지만 훈훈해야 한다. 미래는 절망적일 거야...는 현실이 충분히 이야기해주니까 소설만은 다른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들인데 낯섦과의 배율을 잘 맞춰줘야 한다. 개과천선하는 착한 노숙자는 있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래서 더 흐믓하다.     


이건 사춘기 독서와는 좀 관계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내가 이 소설에 정감을 느낀 요인 중에는 '맥주' 이야기도 있다(맥주를 매우 좋아한다). 작가는 맥주 맛 좀 아는 사람이 분명하다. 편의점에서 파는 소백산 맥주(사 먹어 볼까 하고 검색해 봤는데 그런 맥주는 없었다) 이야기며 수제 맥주 이야기 따위가 알알이 박혀 있다. 인류에게 술이 없었다면 싸움도 자살도 연애도 헤어짐도 실수도 예술도 없었을지 모른다. 맛있는 맥주는 인류의 동반자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주나 와인이 그 역할을 하겠지. 아니면 옥수수 수염차라도.    

 


<순례주택> 제목의 이중성

작가 유은실의 말에 ‘순례’라는 이름 – 작중 주인공 여고생 수림이  같이 살게 된 집의 주인 할머니의 이름이다 – 의 의미가 들어 있다.     

 

‘순례(巡禮)’라는 이름이 가진 자유가 좋다. 삶에서 닥치는 어려움을 ‘실패’보다는 ‘경험’으로 여길 수 있는, 부와 명예를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괴롬과 죄가 있는 곳’에서도 ‘빛나고 높은 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이름, 순례.  -작가의 말 중


그러면서 이 책이 어린 독자들에게 순롓길에 만나는 알베르게 같은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맞다. 나는 중1 독서 시간에 ‘따뜻한 책바구니’라는 제목으로 7종 정도의 책을 각 5권씩 가지고 들어가 책을 읽고 독후활동을 했다. 청소년 소설조차도 공포와 슬픔, 아동학대와 왕따, 살인과 디스토피아를 다루어야 하는 현실이다. 그런 걸 얘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잔인한 현실과, 그걸 반영한 음울한 소설들, 이 가운데서도 결국은 해피엔딩일 걸 알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는 책들은 또 그 나름대로 필요하다. 바로 그런 책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던 거다. 마음에 오래 품고 있던 소망을 그걸 실현하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순례주택>이다. 그래, 이런 책이라면, 즐겁게 읽고 마음 편하게 결말을 맞이할 수 있겠다!   

  

수림이는 평생 세신사를 해서 번 돈으로 연립주택 한 채(건물 통째로)를 갖고 있는 순례 할머니와 친하다. 사실은 순례 씨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여자친구였다. 그들의 집에 자주 놀러가다 친해졌던 것. 순례 씨는 고단한 삶을 살아왔지만 집착이나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너그럽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그렇게 자신의 연립주택에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그의 손녀가 자신의 집에 와서 살게 한다.     


주인공 수림이는 속물적인 엄마, 아빠, 언니의 가치관이 아니라 순례 할머니의 가치관에 더 가까운 아이다. 좋은 아파트, 교수 자리, 1등 등 허울을 좇는 가족을 떠나 순례 주택에 와서 산다. 그 과정이 내가 좋아하는 키득키득 웃으며 읽을 수 있는 문체로 쓰였다. 일단 재미있다. 그리고 수림 가족에게 귀여운 복수가 이루어진다. 뭐... 이 역시 현실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는 일이지만. 나도 남 생각 않고 이기적으로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 빅엿이 떨어지기를 바랄 때가 많다. 많은 돈과 성취를 지향하는 것을 자본주의의 당연한 속성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더라도 그 ‘누림’은 좀 공평했으면 하는 게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아주 정교한 권선징악 소설이 필요하다   

고전소설의 특성을 가르칠 때 꼭 나오는 말이 있다. 권선징악/해피엔딩. 문학의 할 일은 매우 넓어서 현실 반영/현실 비판/비전 제시.. 이런 것도 있어야 하지만 때로는 대리만족/감정이입/위로의 문학 이런 것도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아주 사랑스럽고 귀여운 책이다, 이 <순례주택>은. 나도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 단, 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뿐 아니라 그 플롯이나 인물 설정 등이 결코 안일하지 말아야 하기에 이런 소설은 오히려 결코, 쓰기 쉬운 소설 아님을 이 자리에서 밝히는 바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