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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꽃 Dec 05. 2024

독서 싫어? 이 책은 다를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독서하기 딱 좋은 사춘기 20 <원예반 소년들> 함께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 작가란다. 솔직히 말하면 그가 누군지도 모른 채 이 책을 처음 접했고 나중에야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는데, 읽지도 않았는데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책들이 줄줄이 나온다. 아, 너무 읽고 싶다, 그런데 읽고 싶지 않다.  추리소설은 대개가 범죄, 공포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좋아하지 않는 장르라서.  

일단 작가가 추리 소설가답게 이 소설에도 추리의 요소가 있다. 오래전 화재로 불탄 보육원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류의 추리소설이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마니아들은 같은 작가가 이렇게 다른 분위기의 소설을 쓸 수 있는지 놀란다 할 정도다.


과거와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진정 흥미로운 지점은 현재와 과거가 잡화점 우편함으로 이어진다는 것. 보통 우리가 살면서 과거를 추정하는 것은 현재에 남아 있는 많은 기록이나 증거들을 근거로 해서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빈구석이 많고 영영 밝혀지지 않는 비밀도 많다. 그것이 너무나 궁금할 땐 때로는 과거로 가보고 싶기도 하다. 나 자신의 과거, 젊은 날로 가보고 싶을 수도 있지만 심지어 내가 나기도 전의 과거, 책이나 TV 속에서나 보던 과거를 가감 없이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상상을 구현해 놓은 서사들이 몇 있다. 드라마 <시그널>도, 청소년 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도. 그런 이야기들이다. 때로는 풀리지 않은 미제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때로는 나 자신의 개인적 서사의 미진했던 오해를 풀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가는 일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만나는 접점은, 과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은 그렇게라도 풀고 싶은 오해와 하고 싶은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 양아치인 세 아이는 갈 곳이 없어 폐가가 된 ‘나미야 잡화점’에 몰래 스며든다. 하지만 거기서 바깥 우편함을 통해 들어온 편지를 접하자 왠지 그에 답하고 싶어진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조금은 마음이 동해서, 어떤 의무감에서, 상심한 사람에게 위로의 답을 한다. 과거에 잡화점 주인이 그러했듯이. 그러니까 이 소설의 배경인 현재 시점의 그들 사연은 과거와 연결된다.   


  

솔직히 줄거리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조금 시큰둥해지는 마음이 있다. 소설 속 이야기는... 현실의 많은 사연들처럼 다 그렇고 그렇거나 너무 비극적이거나. 인생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설적 서사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이야기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반복 재생산, 재창조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내가 <나미야>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의 반응이다.     


독서력 약한 아이들에게도 강추

몇 년 전 가족이 함께 쿠바로 여행을 가는 길에 딸에게 비행기에서 읽을 책을 한 권 챙기라 했더니 시큰둥해했다. 그때 챙겨간 책 중 하나가 이거다. 서울에서 쿠바까지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다 보니 순 비행시간만 총 26시간. 지루해 미치기 직전에 책을 집어 든 딸냄은 그 책을 순식간에 다 읽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런 책 또 없어?”  뿐만 아니라 80세인 나의 어머니도(물론 어머니는 젊은날 <토지>와 <혼불> 등을 완독한 독서가이긴 하다) 종종 우리 집에 책을 빌리러 오는데 책을 아주 재미나게 읽고 '그런 있으면 빌려달라.' 하셨다.

그렇다. 학교에서도 이 책은 그렇게 읽힌다. 독서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과거에는 <삼국지>가, 한때는 <해리포터>가, <완득이>가 그런 역할을 한다. 다만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떤 지점에 독서의 매력을 느끼는지 잘 모르기에 ‘우리 아이는 독서를 싫어해’라고 생각하고 당황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살살 꾀어(?) 독서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재미난 책이 세상에는 참 많다.

     

40년 전 이 잡화점 주인 나미야 유지 할아버지는 어쩌다 보니 동네 아이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었단다. 세월이 흘러 문을 닫고 폐가가 된 집에 들어온 동네 건달 아이들이 그런 사연을 알 리 없다. 소설 속에는 당시 일본의 시대상이 개인의 고난과 맞물린다. 어디인들 안 그러랴. 우리도 80년대, 90년대를 향수하는 드라마와 영화들이 나온다. 지금도 곧 과거가 될 것이고 우리 아이들도 곧 어른이 되어 2024년을 추억할 날이 올 거다. 더 어른이 되면, 저출산과 전쟁 위험, 이스라엘과 가자의 전쟁, 아닌 밤중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 등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던 우리, 불안했던 정치 상황 등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거창한 서사가 아니더라도 책속에서 음악에의 열정과 가정의 불화를 겪은 사람처럼 개인의 고민과 진로를 걱정했던 자신을 기억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의 고민을 어딘가에 보냈을 때 누군가 미래에서 “걱정마세요,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요.” “어떻게 아세요?” “제가 지금 2050년을 살고 있는데 그런 일은 없었거든요.”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하지 않나요?” “아뇨, 어찌저찌 정치는 안정되고 저출산 문제는 서서히 회복이 된답니다. 2040년은 대한민국 최고의 전성기였고요.” “... 그럼 저희 아이들은, 지금 취업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잘 살겠지요?” "그럼요, 그럼요. 힘들었던 그 시절을 요즘도 가끔 이야기하면서 웃곤 하지요." 라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인생은 앞을 모르기에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것이긴 하지만.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오버도 맹신도 필요 없다. 인생은 흘러간다. 하지만 상상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어떤 세상이 와도 인간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추천사처럼 ‘따뜻한 책’이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청소년에게 독서의 기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 분위기의 소설 좋아하신다면 또 다른 일본 소설 <원예반 소년들> 도 강추하는 바이다.  원예반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꼬마 야쿠자' 소년의 식물 사랑은 귀엽고 화분의 식물을 잘 키워보려는 소년들의 노력은 사랑스럽다. 청소년 소설에도 많은 어두운 사연들이 등장하지만 때로 따뜻한 소설로 위로받고 싶다면 이 두 편의 소설이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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