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기 딱 좋은 사춘기 18
싸이퍼가 뭐지? 솔직히 나는 책의 제목조차 낯이 설었다. ‘싸이퍼’는 래퍼들이 대화하듯 랩을 주고받는 배틀을 말한단다.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 인물들이 시합인 듯 화해인 듯 화합인 듯, 그렇게 싸이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목이 눈에 들겠어? 했는데 웬걸, 아마도 나같은 사람이나 몰랐겠지, 아이들은 다 아는 듯하다.
원래 힙합은 저항의 상징이었다만
나에게는 힙합에 대한 편견도 좀 있었던 것 같다. 딸애는 랩을 좋아하고 자주 듣는다. 그 덕분에 나도 가끔 듣긴 하지만 솔직히 좋아하진 않는다. ‘디스’라는 이름으로 말 그대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방식이나 가사 속에 속속 등장하는 비속어가 거슬린다. 안 그래도 욕설로 하루 온 종일을 도배하는 우리 남중딩들에게 힙합이 결코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심리학적으로 그들의 억눌린 감성을 배출하게 하는 순기능이 있을 순 있다. 게임도 랩도 그런 ‘무의식의 발현’, ‘그림자 작업’이라고 본다면 이들에게 아름답고 고상한 세계를 경험하는 일은 도대체 언제 가능하다는 걸까 싶었던 거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또 다른 힙합의 세계가 가능함을, 아니, 내가 모르는 그런 세계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슬라보예 지젝과 피츠 제럴드가 등장하는 랩
이 소설은 ‘도건’와 ‘정혁’이라는 두 중딩, 고딩(?) 래퍼들 이야기다. 물론 현장에서 그들은 다른 닉네임들을 갖고 활동한다. 내가 가졌던 편견처럼 저속한 표현으로 일관하지만은 않는다(욕설은 세상에 저항하려는 수단일 뿐). 오히려 그들은 시와 철학과 문학,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으로 진지하기 짝이 없는 힙합의 세계를 구현한다. 사회 시간에 세계사를 배우면서 ‘그들에게 랩이 있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외치는 도건의 주장은 근거 없지 않다. 랩의 거친 모습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순화된(?) 저항의 또 다른 양상이다. 솔직히 한국 랩에서 거시적인 저항을 많이 보진 못했다(내가 아는 거라고 MC스나이퍼 정도가 다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중고딩들은 자그마치 슬라예보 지젝을 들먹이면서 자본주의를 ‘깐’다. 피츠 제럴드를 언급하면서 삶을 노래한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은 청소년들을 고무할 것 같다.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되 그들이 즐겨듣는 랩으로 들려주니까. 소설은 내내(특히 도건이 말할 때마다) 랩 하듯 흘러간다.
사춘기에는 음악이 필수, 어른들은 경청은 했수?
수업에 필요해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너네 요즘 즐겨 듣는 노래 제목 하나만 말해 봐." 하니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갑자기 아이들과 친해졌다, 그들이 들려주는 노래며 가수를 공부하고 대화를 나누느라. 또 작년에는 ‘소설 읽고 대중가요 가사로 재구성하기’라는 수행평가를 하면서 또 그들의 정신세계를 살짝 엿본 적이 있다.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먼저 조사해 오게 했는데 그걸 걷고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가 그 노래를 왜, 얼마나 좋아하는지 들려주었고 그 가사 안에 다른 작품을 담아내면서 가사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경험을 했다. 개사이기는 하지만 ‘작사’도 해보았다. 사춘기에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로부터 멀어지지 말아야 좋은 어른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