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기 딱 좋은 사춘기 19
장애를 가진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 범죄자, 능력이 부족한 사람,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세상을 달리 보는 사람, 몸이 약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는 사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위험한 사람,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돌연변이, 약자, 소외된 사람, 이상한 철학이나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 성소수자, 기괴하게 생긴 사람, 괜히 불쾌감을 주는 사람....
...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배제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별 힘이 없고 권한이 없어도 서너 명만 모이면 어떻게든 에너지를 뿜는다.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정치인이 되면 배제의 법안으로 만들며 저들을 옭죌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절대 권력을 갖게 되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해지는지는 역사적으로 경험해 잘 안다.
'다름'을 배제하려는 차별주의자들이 만든 세상을 그린 책
그런 ‘차별주의자’들은 어디까지 배제하고 싶어 할까? 눈치볼 사람이 없이 마냥 그 배제의 외연을 확대하다 보면 결국 <기억전달자>의 세계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폭력과 범죄가 ‘다름’, 그리고 욕망과 감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인간에게서 그 다름의 요소들을 다 제거하고 나서 가장 평등하고 가정 평온(해 보이는)한 세상을 만든다. 그걸 만든 이가 누구인지 소설 속에서는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섭다. 다수의 이름으로 저런 결론에 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에.
소설의 도입부에서 소개된 세상은 지극히 평화롭고 안정돼 보였다. 하지만 점점 이 안정감의 정체에 의심이 든다. 범죄와 부도덕의 근원이라 여겨져 성욕을 억제하는 약을 먹인다는 발상은 끔찍하지만 그나마 상상력의 범주 안에 있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상상은 몸이든 마음이든 ‘끌리는’ 상대를 내가 선택하는 일의 싹을 제거하는 일이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제어는 모두 인간의 자발적인 감성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감성을 고조시킬 수 있는 것들 하나하나를 제거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사람들의 감정의 흔들림을 억제하기 위해 빛을, 바람을, 햇빛을 모두 제거했다. 조너스가 사는 세상에는 음악도 없고 예술도 책도 없으며 꿈도 제어되는 그런 세상인 것이다.
회색빛 세상을 보았는가
스무 살 시절 가벼운 우울증을 앓았다. 그 때의 회색빛 세상을 지금도 기억한다. 조너스의 세상은 그런 세상이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공평한 세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기억일지라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듯 보인다. 죽음은 ‘죽음’이라 말하고, 상실한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애도해야 한다. 하얀 눈의 아름다움과 그 위를 달리는 쾌감을 얻으려면 발가락이 얼어붙는 고통도 같이 껴안아야 한다. 자유의지가 없이, 고통도 없이 진정한 행복이 있을까? 설령 행복하다고 생각한들 그것은 진실한 것일까? 평안함, 행복함만을 위해 외면해도 되는 진실이 있는 것일까? 통제하는 자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기에 더욱 공포스러웠고 흔히 보아왔던 것과 다른 디스토피아를 보여주었기에 더욱 우울했던 이 소설을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햇빛, 바람, 음악, 빛깔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기만 해도 책을 읽힌 보람을 느낄 것이다.
당연한 듯 곁에 있는 이 아름다운 것들은 불편한 것들을 견디면서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줄 알아서 고마운 줄 몰랐던 것들이 사실은 간절하게 소중한 것들이라는 깨달음을 코로나 창궐의 공포 속에 동결시켜야 했던 일상을 통해 얻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