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꽃 7시간전

너라고 불러도 될까요?

우울할 땐 스페인어 공부 13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는 어린 친구들이 많다. 그들이 나를 부를 때 두 손 고이 맞잡고 배꼽에 얹은 후 ‘저, 선생님~’이라고 조심스럽게 부르는 것은 나의 인품과 실력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라고 믿고 싶지만 아마도 십중팔구는 그들 나이에 네 배에 육박하는 나의 나이 때문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내 앞에서 그들이 다른 동료를 언급할 때는 “네, 혜교 쌤이 그러는데요...” “저 인성 쌤이랑 상담하고 왔어요.” 이런다. 젊고 아름다운 그 ‘쌤’들에게는 뭐랄까, 세대를 넘는 공감대와 친근감을 느끼나 보다. 젊고 어린 그들의 관계가 살짝 부러우면서 예쁘다고 생각했다.     


내 이름을 부른 소년

아니다. 이런 내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어느 날 만난 나보다 키가 두 배는 큰(그래서 그의 앉은키와 나의 선 키에서 눈높이가 거의 엇비슷한) 잘생긴 소년이 나에게 “정선 쌤, 안녕하세요~”라고 말했을 때 기뻐했어야 했겠지? 그러나 난 생전 처음 들어 본 그,  이름에 성(姓)을 떼어낸 그 호칭이 너무나 낯설어서 그만 박자 맞춰 “어, 중기도 안뇽?”이라고 다정하게 인사를 하지 못 하고 말았다. “어? 어~ 안... 안뇽... ”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있을 때야 ‘병헌 쌤, 지현 쌤’이 아니라 ‘그 새끼 저 새끼, 요뇬 조뇬’를 해도 할 말이 없다. 우리 어렸을 때도 선생님을 언급할 때 이름만 말하거나 국사, 영어, 이렇게 과목을 언급하면 점잖은 일, 욕도 서슴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나가다 들으니 우리 아이들은 성은 떼낼지언정 꼬박꼬박 이름 뒤에 ‘쌤’을 붙여 불러주니 이 얼마나 예의바르냐 말이다.

다만 나만 그런 문화가 있는지조차 몰랐던가 싶어 아이들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너희들, 선생님 이름 부를 때 평소에도 그렇게 부르느냐고. 그랬더니 자기들이 좀 미국문화라 그렇단다. 하긴, 미드에 보니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제임스, 이렇게 부르기도 하더만. 그래, 세대 차이지, 뭐, 내가 넘 오래 살았, 쿨럭~    


저희가 쫌 미쿡문화라숴~ 

아냐! 그래도 미국애들도 썰Sir ~ 하든지 티철 Teacher Tomas~ 하든지 Mr. Bond 하든지,  걔들도 선생님 부를 땐 좀 어려워하더라!

내가 화를 좀 냈나? 화날 일도 아니건만... 그저 낯설어서 그런다. 내가 아는 외국어라야 영어 스페인어 조금일 뿐이니 다른 언어권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다. 상대방 호칭에 예의를 몹시 부리는 한국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낯설긴 하다.

그래도 선생들 이름을 부르는 소년들의 해맑은 태도로 보면 악의는 없는 게 분명하니 아무래도 우리가 적응하려 애쓰는 게 맞을 것 같다. 따로 불러서, 응? 한국에서는 그러는 거 아냠마! 이렇게 교육을 시키면, 네, 알겠슴다 안00 선생님, 해놓고 돌아서서 아, 꼰대~ 그럴 것이 분명하다.  


영어는 전부 존댓말   

흔히 영어에 존댓말이 없다고 하는데 유튜브를 보다가 미국에서 온 타쌤(타일러 라쉬)이 “영어는 전부 존댓말입니다.”라고 말하는 걸 보고 살짝 충격 먹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조손이 “할아버지, 이거 네 거야?” “응, 타일러, 나 베이컨 먹을 건데 너도 먹을래?” 이런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할아버지, 이거 할부지 거예요?” “네, 타일러, 나 베이컨 먹을 건데 당신도 먹을래요?” 이런 거라는 거 아냐? 그러니 격차 없이 모두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 맞다. 너/당신/그대/타일러/언니/오빠/할아버지를 모두 You라고 부른다 해서 존중이 없는 것은 아닌데 우리는 영어권 사람들 모두 서로서로 ‘너’라고 부른다고 해설을 했던 건 아닌가.     


스페인어의 'Tu'는 '너'가 아니다

스페인어에는 ‘너’와 ‘당신’을 Tu/Usted로 구분한다. 엄마아부지를 부를 때 Tu라고, 직장에서 상사를 부를 땐 Usted이라 부르긴 하지만 그것을 ‘너/당신’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친근한 사람인가 형식적인 관계인가에 따라 호칭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는 게 낫단다. 아직 친구를 사귀지 못했지만 스페인어권 외국인 친구가 어느 날 “Como estas(너는~한 상태다,에 해당하는 동사)? 너 잘 지내?” “Que te parece(넌 뭐라고 생각해?)? 라고 물으면 “야이씨~, 너 몇 살이야, 몇 학번이야, 몇 년 생이야? 얻다 대고 ‘너’래? 확, 이걸 기냥~” 하고 열받을 일이 아니라 “엄머, 저 다정함이라니, 이제 너도 날 친구로 여기는구나, 하긴 내가 봐도 난 좀 호감형이긴 하지 creo que soy mucha sympatica!” 이러면서 흐믓해 할 일인 거다.     


그러니까 나한테 ‘정선 쌤’이라고 부른 그 친구, 넌 무례한 게 아니라 다정했던 거야. 너희와 나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범세계시민주의자인 중기 군, Te Qierro~(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눈동자는 갸름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