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꽃 Jul 11. 2024

나의 눈동자는 갸름하다

우울할 땐 스페인어 공부 12


참 이상하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그리 뚱뚱하지도 않고 머리가 크지도 않은데 사진을 찍으면 왜 그러지? 엊그제도 직장에서 동영상을 찍을 일이 있었다. 다른 이 업무를 찍어줘야 하는 거였는데 오고가는 내 모습도 간간히 등장한다. 헐~, 20년 전 자켓, 그때만큼의 뽀대는 안 나지만 아직 몸에 맞는 그 옛날 자켓에 안에는 몸에 쫙 붙는 검은 셔츠를 입었는데, 영상 속엔 웬 펑퍼짐한 할미가... 


그래, 사진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가끔씩 이렇게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현타를 맛봐야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영상 속의 나는 딱 내 나이만큼 보인다.


사진 속의 뚱뚱한 할미, 누구냐 넌

직장 사무실은 5층인데 엘베가 없어 걸어올라가야 한다. 층계참마다 엄청 큰 전신거울이 있다. 사람 없을 때 흘끔거리며 내 복장을 살핀다. 당연히 살펴야지, 사회생활 잘 하려면. 

그때마다 뭐, 키는 작지만 키가 작아서 살찌지 않으려 애써온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직장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면 짜리몽땅한 데다가 통통하기까지 한 아줌마가 보이냐고!


거울 속의 내 눈동자를 빤히 바라본다. 저 친근한 얼굴, 저 익숙한 눈동자. 노화에 의한 약간의 백내장 테두리가 있지만 돋보기를 끼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아서 착각하는 건지는 몰라도, '하늘빛 고운 눈망울'은 아닐지라도 50대 치고는 초롱초롱한 편이라고 생각했던 내 눈동자, 어쩌면 내 눈동자 - 정확히는 수정체?- 는 동그라미가 아니라 갸름한 타원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 않다면 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사진보다는 덜 뚱뚱해 보이는 거냐. 


아님 난 나 자신에게 콩깎지가 씌인 나르시시트일지도...


총기 있는 호모 사피엔스로 살려면

스페인어로 눈은 ojo다-. 이렇게 직관적인 단어가 있다니.

 발음은 /오호/ 

호를 발음할 때 스페인어의 j, g는 ㅎ 발음을 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중세 국어의 쌍히읗처럼 강렬하게 발음해야 한다. /옼호/ ? 

눈동자는 pupila.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단어에 '총명', '명민함'이란 뜻도 있다는 것. 우리말에 총명[聰明]도 귀 밝고 눈 밝다는 뜻 아닌가. 어디서나 호모 사피엔스가 똘똘해 보이려면 눈이 맑아야 하는 거다.


짱짱한 시력으로 평생을 살다 노안에 시달려 보니 지난 40여 년의 세월이 얼마나 축복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는 누구나 이렇게 또렷하고 선명한 세상에 사는 줄 알았다. 돋보기를 쓰기 시작하자 많은 이들이 안경을 끼거나 흐린 시력으로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마다 돋보기를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눈물이 자꾸 나는 눈을 비비면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화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춘기 때는 세상에 나만 사는 줄 알고 남의 눈을 안 보았는데, 어른이 되니 온통 부조리한 세상이 싫어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았는데, 어린 아이들을 키우며 그들 눈 깊이 바라보며 비로소 사람의 눈을 바라본다는 일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는데, 그리고 그들이 내 눈에서 사랑을 발견한다는 걸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눈을 쪼프리고 고개를 살짝 돌리며 눈을 피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Yo quiero hablar mirando a tus ojos

네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싶다

언젠가 검은 눈망울이 회색빛으로 흐려지겠지만 눈빛에는 따스함을 담아, 내가 통통한 나를 날씬한 나로 봐주듯 젊은이들 말과 행동 몸과 얼굴 모두 예쁘게만 보아주는 그런 눈으로 살아가련다. 어차피 사람의 눈이 완전 객관적인 건 아니니까, 기왕이면 조금 긍정의 필터를 장착한 렌즈를 끼고 다정한 필터링으로. 그러니까 못생겨보이는 각도의 거울은 치우거나 안 쳐다보는 걸로.  그리고 늙은 눈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따스한 할미 미소를 지으면서 '너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려 애쓰는 걸로, 오늘 결론.



매거진의 이전글 짧고 굵은 나의 집중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