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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May 10. 2021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유창선)

  죽음의 문턱에서 알게 된 것들, 이 책의 부제이다. 표지에 적힌 이 말이 나를 강하게 끌었다. 요즘 들어 죽음에 관련된 책들을 읽는데 누구나 맞게 되지만 그게 자신은 아닐 거란 생각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직장인이라면 직장에 더 이상 출근할 수 없음을 알려야 할 것이고, 자영업자라면 대신 일을 할 사람을 세우거나 사업을 접어야 할 것이다. 주부라면 가족 걱정이 먼저일 것이고, 학생이라면 학업에 대한 염려도 있을 것이다. 만약 하던 일이 너무 많다면 건강보다 일을 먼저 생각할까? 아니면 건강 앞에서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될 것인가? 


  저자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동안 방송인이자 강연자, 인문학 책 저자로 살아왔다. 나에게 익숙한 팟티 운영자이기도, 브런치 작가이기도 했다. 심지어 시사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당시 그의 이름을 딴 닷컴 티스토리 블로그도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블로그의 글은 2016년에 멈춰 있다. 사실 나도 그동안 여러 매체에 개인적인 글을 쓰고 있는데 어느 순간, 멈출 날이 올 것이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말처럼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꾸준히 글을 쓰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알게 된 뇌종양이라는 병은 저자의 모든 강연 일정과 여행을 취소하게 만들었고, 오래 기다리기에 위험할지 몰라 병원을 옮겨 서둘러 뇌수술을 진행했다. 인지적인 부분의 손상을 가져오진 않았지만 그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사람으로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현재 자신이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 감격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동안 당연히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장애를 가진 분들의 88퍼센트가 후천적이라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저자의 말처럼 문어발식으로 수많은 활동을 홀로 소화하던 그는 병 앞에서 한동안 모두 멈춰 섰다. 아마도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평생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수술 후 자신의 건재함을 확인하기 위해 이틀 후부터 글을 썼다는 그는 병실에 누워 핸드폰으로 한 자 한자 글자를 찍어 쓰기 시작했다. 그의 브런치를 보고 이 책 이후에도 또 책을 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해 왔던 방송 일도, 강연도 지금은 어렵게 되었다. 삼킨다는 것, 그리고 혀를 움직여 자연스럽게 발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는 이제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입장이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은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 내면의 본질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은 저자는 더욱 글쓰기에 매달리게 된다. 앞으로 그의 활발한 저작 활동을 기대하게 된다. 


  죽음 직전에까지 가기를 여러 번 (기립성 저혈압으로 자주 쓰러졌고 뇌종양 제거 수술은 위험 부담이 컸다) 했던 그가 앞으로는 더 건강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의 활발한 활동을 응원하고 싶어 졌다. 그의 글을 읽으며 비단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왜 하필 나에게만’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가 완전하진 않지만 지금처럼 다시 건강을 되찾게 된 데는 가족의 노력, 특히 아내의 헌신이 있었음을 저자는 밝힌다. 수술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막막한 남편의 회복을 무작정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꿋꿋이 잘 이겨내었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잃은 것도 있지만 소중한 것들을 알게 되고, 가족의 사랑을 힘입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저자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 본문 내용 ---


- 사실상 병상에서 글쓰기는 매우 힘들고 불편하다. 몸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침상에 밥상을 펴놓고 앉아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누운 상태에서 휴대폰에 깔려 있는 앱에 원고를 쓰게 된다. 한동안 내가 외부에 기고했던 글은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해서 완성된 것이다. 병상에서 병을 상대하는 것만도 벅찰 텐데 어째서 나는 불편한 환경에서 그렇게까지 글을 쓰려했던 것일까. 어디에든 글을 쓰는 과정은 나 자신이 살아서 존재함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하며 글을 쓰지 않으면 네가 살아 있음이 확인되지 않느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병상에서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치료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인 사람이 많겠지만, 내 경우는 글을 씀으로써 힘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글 쓰는 행위가 육체적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믿고 있다. 내 힘의 마중물인 셈이다.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장소가 어디든,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글을 씀으로써 자아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자신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랫동안 병실에 있으면서 나에게는 고통을 이겨낼 강한 의지 혹은 앞으로의 새로운 삶을 위한 다짐이 필요했고, 글쓰기는 바로 그러한 시간이었다. (61-63쪽)


- 인생을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마다 꿈과 계획을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아주 갑작스럽게 혹은 우연하게 발생한 일은 계획을 소용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계획 없이 사는 인생의 위험과 나태함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렇기에 인생은 늘 앞을 알기 어렵다. 미래가 이성이나 의지가 아니라 종종 우연한 사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가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며 미래를 설계할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86-87쪽)


* 팟티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cast/206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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