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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May 14. 2021

야성

들개 (이외수)

  이번 달 인문학 모임 도서라 이 책을 구입했다. 이외수의 글쓰기 책이나 에세이를 읽은 적은 있지만 소설은 처음이었다. 사실 이 책이 유명한 것 같아 읽어 볼까 한 적이 있었지만 개가 주인공인 줄 알고(동물이 주인공인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읽지 않았었는데 첫 부분을 읽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알고 바로 책에 빠져들었다.  


  대학을 중퇴한 여학생이 주인공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여성의 심리를 잘 묘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버스를 기다리던 여자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거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이다. 모르는 남자가 말을 건다면 대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드문 곳이라면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말에 넘어가고 함께 술을 마신다. 알고 보니 남자는 여자에 대해 조금 알고 있었고, 그녀의 공책을 가지고 있기까지 했다. 작가 지망생인 그녀의 공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남자는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가족을 잃고 숙부와 지내던 여자는 이민 가는 숙부를 따르지 않고 혼자 남아 어렵게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집도, 직장도 잃고 버려진 건물에서 숨어 지내는 그녀는 남자를 만난 첫날 자신의 은거지로 데리고 온다. 시간이 지난 후 혼자인 줄 알았던 그녀는 남자가 몰래 같은 건물에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여자는 생활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일을 한 적이 있으나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두문불출하며 책을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중이었는데 남자의 행적은 그녀를 능가한다. 그림을 그리던 남자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결혼을 하고 회사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이혼을 한 상태였다. 오로지 그림만을 위해 사는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안타까운 그들의 삶에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토록 배가 고프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배고픈 예술가의 생활을 너무나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말을 통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더럽고 역겨운 것들을 껴안는 작업임을 알게 되었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나 청소년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무언가 독자를 끄는 강력한 힘이 있는 책이었다. 이외수라는 작가를 다시 보게 한 책이다.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아 여파가 오래갈 것 같다. 그가 쓴 다른 작품들도 이런 분위기일지 궁금하다. 


--- 본문 내용 ---


- 과학은 수시로 경이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보다 소중한 것을 소멸시켜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전화기의 발명 때문에 차츰 연애편지가 소멸되어 가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과학이 마침내 모든 인간을 소멸시켜 버릴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이다. 언젠가는 인간이 과학의 발달을 최대한으로 억제시키느라고 허둥지둥 정신을 못 차리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양식을 갖추지 못한 어느 정서 불안정의 집권자가 있어 단추 하나만 잘못 눌러버리면 세계는 끝장이다. 흔히 경제개발에 관련한 포스터 속에 공장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힘차게 치솟아 오르는 광경을 번영의 상징으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고 흐뭇한 미소를 띠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 한 켤레의 나일론 양말을 신기 위해 한 바가지의 오염된 물과 공기를 마셔야 할 날이 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차라리 맨발로 다니더라도 맑은 물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사는 것이 우리에게는 한결 이롭다. (293-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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