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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May 18. 2021

기다림의 의미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해럴드 슈와이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아이 친구를 떠올렸다. 뇌병변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는 다정한 아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지금도 서로 연락을 하고 가끔 만난다. 언젠가 아들이 친구가 썼다는 시를 보여준 적이 있다. 기다림에 익숙하다는 내용의 시여서 마음이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는 정말 멋진 시인이었다. 이 책도 기다림을 통해 무언가 큰 깨달음에 이른다는 내용의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생각하니 제목이 내용과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 분이 무언가 큰 의미로 지은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미용실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며 읽느라 참 절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 덕분에 기다림이 지루하진 않았지만 쉬운 책은 아니었다. 어떤 부분은 그냥 눈으로만 읽고 넘어간 부분도 읽고, 어떤 곳은 잠시 조느라 기억이 나지 않기도 했다. 옮긴 이는 오래오래 곱씹으며 읽으라고 했는데 나는 머리 하는 동안 책장을 일단은 다 넘겼다. 저자는 기다림이라는 것에 대한 걸 이 책, 저 책에서 참 많이도 찾아 발췌했다. 기다림에 대한 논문을 쓰는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여러 저서의 부분이 등장했지만 롤랑 바르트나 모리스 블랑쇼와 같은 저자의 책 내용이 많이 언급되었다. 

  문학이나 그림에 나타나는 기다림의 시간들도 적었는데 제목에서부터 기다림이 묻어나는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인용과 죽어가는 연인 발렌틴 고데 - 다렐의 모습을 단계적으로 그린 스위스 화가 페르디낭 호들러에 대한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무의미한 듯 보이는 고도를 기다리는 이들의 이야기는 당시에 지탄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이런 작품을 남겼을까 싶기도 하다. 죽어가는 연인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화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단지 생명에 대한 외경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는 명성을 위해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자도 언급하기를 피하는 부분이다. 아마도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먼 나라에 살고 있는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의 작품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했다. 그의 이야기에서 기다림은 관심이라는 말을 인용하는데 관심이 없다면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고, 기다림이라는 것 자체의 의미도 없어지는 것 같다. 어떠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지켜보는 것, 그로 인하여 수많은 예술작품이 나오고, 문학이 탄생하고,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는 것. 기다림의 보람이자 보답일 것이다. 

  요즘, 잠깐의 기다림도 없어져가는 무척이나 바쁜 세상이 되었다. 심심할 틈 없는 현대인들은 기다림이라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하는 것 같다. 무엇이든 빨리 해결하기를 바라는 경향은 놀라운 발전을 이룬 대신 인간미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기다림의 보람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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