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간' 김동식 작가님 북토크

by Kelly

지난달 신청하고 기다려 온 김동식 작가님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먼 길을 갔다 오느라 저녁을 못 먹어서 차를 세우고 호호삼송에서 봄 메뉴인 춘향전(방풍나물쑥전) 한 판을 다 먹고 북바이북으로 갔다. 작가님과 편집자님이 먼저 와 계셨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조금 나눈 후 다시 꺼내 읽는 중인 회색인간을 읽었다. 다시 읽어도 정말 기발하다. 이런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는지 궁금했다.(북토크 중에 비결을 말씀해 주셨다.)


5분 전쯤 작가님이 테이블에 와 앉으시며 인사하셨다. 어색하고 쑥스러울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담담해 보였다. 연 400회 강연을 하신 분이니 전혀 떨지 않으실 것 같긴 하다. 3 더하기 2가 좋아하는 과자는? 갑자기 물어 멍하니 있었는데 “오란다”, 작가님의 말. (카운터 옆에 판매 중인 오란다 과자 봉지가 보였다.) 어색할 때는 아재개그라던 책 속 말이 생각났다.


편집자님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는 북토크라 편안했다. 첫 에세이를 쓰기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지 않아 그동안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앞으로도 에세이보다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였다.) 에세이를 쓰는 과정은 의외로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고.


내가 요즘도 PC방에서 글을 쓰시느냐고 물었더니 쓰던 글을 한 번 날린 후로는 거의 안 가고 카페에서 글을 쓰신다고 하였다. 주로 밥 먹기 전에 가서 다 쓰고 먹는단다. 먹고 쓰면 졸음도 오고 집에 가고 싶어 지니까. 작가님은 외롭기도 하지만 고민을 잘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작가님의 관점에서 행복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자신의 명성을 높일 수 있다면 더 행복하다.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라는 말처럼 들렸다. 학교에 강연을 가서 보면 전형적인 모범생 아이들 혹은 뭔가를 잘하거나 남보다 많이 아는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자신도 오락실에서 게임을 워낙 잘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 부유하진 않았지만 자존감은 굉장히 높았던 것 같다고 한다.


작가님의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그렇게 나오나 했더니 게임에서 많은 부분 가져왔다고 하였다. 스토리 좋은 게임은 영화보다 재미있고, 게임은 스킵이 가능해 지루하지 않다고 했다. 테트리스 외에는 게임을 거의 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신비의 세계다. 편집자님이 작가님은 소재를 정하고 결론까지 낸 후 글을 쓰는 것으로 알고 계시다며 소설 구상을 어떻게 하는지 물으셨다. 먼저 착상을 한다. 뒷내용이 궁금해지는 한두 줄을 만드는 것으로 중요한 첫 과정이다. 쓰는 사람도 이해 못 하는 게 가장 좋은 글이라고 하셨다. 그걸 이해시키는 과정이 다음 작업이다. 소재는 주로 인터넷, 최소한의 사건들(자리 양보, 음료 쏟은 일, 돈 줍기, TV나 영화의 한 장면 등)에서 가져오고, 이후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뒤의 내용이 궁금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던 할머니를 돕다가 짐을 떨어뜨렸는데 그 안에서 자신의 사진이 나왔다면? ) 상식 밖의 경우의 수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 하고 싶은 말과 캐릭터를 생각해 이어질 내용을 여러 가지로 떠올려 본다. (예를 들면 할머니가 몰카 중, 나의 죽은 할머니였다, 주인공의 정신착란 등) 마지막 결말에서 빵 터뜨리는 것이 짧은 소설의 묘미라고 하였다. 이 과정을 거의 하루 만에 완성한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작가다.


소설에 비해 에세이는 머릿속을 뒤져서 나온다. 무언가를 보고 느낀 ‘나’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경우의 수가 없다.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이다. 시작은 쉬운데 어떻게 끝내야 할지 결말이 어려웠다고 한다.


‘초단편소설쓰기’라는 작법서도 썼다. 가독성이 좋아야 하고, 짧아야 하고, 쉬워야 한다. 20매 원고지 20-30매(A4 2장~2장 반) 정도의 분량이면 된다. 필요 없는 부분이나 의미 없는 대화를 넣지 않고 칼같이 빠르게 진행한다. 때로는 방정식으로 대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사건(길 가다 돈을 주운 일)에 사랑(돈에 애인 구함, 전화번호), 목숨(줍는 순간 죽음), 소원성취, 의인화, 권선징악, 신적 존재.. 등의 공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작가는 최소한의 말만 해도 독자의 머릿속에서 영상이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글쓰기의 루틴과 앞으로의 계획을 내가 질문했다. 글을 쓸 때 술, 담배, 커피를 드시지 않는다. 대신 포도당 사탕을 먹는다고 하였다. 뇌가 의외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왠지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다고 한다. 앞으로도 번호 붙인 시리즈는 쓰지 않겠지만 테마를 정한 단편소설들을 쓸 예정이지만 경장편이나 중장편에 도전해 볼 예정이라고 하셨다. 너무 파격적이거나 잔인한 소설을 읽기에 조심스럽다면 ‘인생 박물관’이라는 소설을 읽어보기를 권하셨다. 울면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한분이 청소년인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물으셨고, 그는 세 가지가 있으면 좋다고 했다. 첫째, 운이 좋아야 한다. 둘째, 꾸준함이 있어야 한다. 1년 반 동안 300편 이상의 소설을 쓰셨다고 한다. 셋째, 좋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첫 댓글을 항상 본인이 달았다고 한다.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댓글도 겸허히 받아들인 그는 독자들이 그를 응원하게 만들었다. 그의 겸손이 작가를 현재의 위치에 있게 한 게 아닌가 싶다. 작가는 말한다. “운은 어쩔 수 없지만 꾸준함과 좋은 태도는 노력하여 갖출 수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는 수십 명 중 한 명만 바뀌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강연한다고 하였다. 나도 이 말을 마음에 새겨야겠다.


이렇게 유명한 분들이 북토크를 하시는데 내가 과연 북토크를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월에 이미 두 개의 북토크가 계획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당연히 하셔야지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날도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이길. 한 명만 바뀌어도 성공이라는 마음으로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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