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 갈 때도 들고 갔던 이 책을 방콕의 한 카페에서 순식간에 다 읽었다. 여행 친구로 좋은 얇은 책이어서 좋았다. 달리기를 취미생활로 택한 저자의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실연의 슬픔을 안고 얼떨결에 달리기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3킬로미터 달리기도 힘들어했던 그는 풀코스 마라톤을 6번째 달렸다.(지금은 더 많이 해냈을지 모르겠다.)
같은 길을 늘 달리다 보면 지루함을 느낀다. 그는 시도해보지 않았던 어둠 속 길에서 더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가보지 않은 길을 시도해 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막상 해보면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싶을 때가 많다. 혼익인간(혼자가 익숙한 사람)이던 그에게도 어느 날 러닝크루에 합류하는 계기가 생긴다. 회사 근처 코스였고, 그날따라 새로 받은 러닝화와 러닝복이 있었던 것이다. 러닝크루는 체계적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선두에는 레이서가 있고, 스탭이 중간과 뒤에서 위험요소를 알려주고, 늦어진 멤버를 격려한다. 혼자서는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음을 러닝크루 활동으로 깨닫는다.
10킬로미터 마라톤을 시도했던 그는 서울 국제 마라톤 대회인 하프마라톤을 거쳐 파리 풀코스 마라톤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남들의 만류에도 호기롭게 나섰던 그는 중간에 쉬기도 하고, 완주 후 의료진의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결국 해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꾸준한 훈련을 통해 이루어냈다. 회사 다니며 언제 달리고 언제 이런 글까지 썼는지 존경심이 몽글몽글 솟는다. 파리 마라톤과 오사카 마라톤에서 달리며 겪은 일들과 만난 사람들을 읽으며 눈물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이를 악물고 뛰는 이들 중에는 특별한 이유를 가진 이들이 있었다.
꾸준함은 재능을 넘어서게 한다. 콧구멍 한쪽이 좁아 러너로서 부적절한 신체를 가졌음에도 그는 꾸준함으로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계속 발전 중일지도 모른다. 전보다 성적이 안 좋다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모두가 과정이고 그 과정이 즐거우면 된다. 이루지 못했다고 뭐랄 사람은 없다. 있다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취미생활의 매력이다.
뛰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파리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저자가 부럽기는 하다. 개선문에서 시작해 차 없는 거리를 달리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달리기 위해 해외로 가는 그를 보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렸다. 요즘 달리기 인구가 많이 는 것 같다. 앞으로도 점점 늘 것이다. 합류 가능성이 희막한 나이지만 그래도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혼자만의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달리기가 많은 이들의 협력 속에 이루어지고 있음은 감동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만난 조카가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와 저자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러너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