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의 30대 때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책을 읽었다. 얼마 전에 읽은 ‘오늘도 그림’에 소개되어 있어 구입했다. 전에 얼핏 그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듣고 몇 점 찾아본 기억이 난다. 책에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경위와 이유, 그리고 배우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의 작품들과 함께 담겨있었다. 그가 영향을 받은 작가들 역시 그림과 함께 깜짝 등장한다.
대본과 노트에 빼곡히 씌어 있는 색색의 글자들을 보면서 얼마나 치열하게 연기를 준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에게도 아픔의 시간이 있었다. 감정만으로 무대 위에서 연기가 가능했던 시절, 어느 날 그는 무대에서 그 ‘감정’이 생기지 않아 자칭 ‘발연기’를 하고,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들었던 사건이다. 그날 이후 그는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픔을 겪고 연기를 내려놓은 사람도 있었을 텐데, 아마도 그는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면 무언가 이루어낸다.
그림에 대한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고된 촬영 후에 찾아오는 공허감과 지침을 쉼으로 해결하는 것은 그에게 부족함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 오히려 없던 힘이 생겨났을 것이다. 힘든 날 바이올린과 태권도를 하며 스트레스를 날린 경험 덕분에 격하게 공감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몰입을 처음 연구할 때 뉴욕의 화가들을 관찰했던 것을 보면 그림은 몰입에 아주 좋은 도구이다. (아이들이 미술시간을 좋아하는 이유일까?)
고현정 배우가 미술에 조예가 깊어 그에게 화집도 선물하고 여러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는 부분이 인상 깊다. 돌고 돌아 다시 미술에 작은 관심이 생긴 나도 화가들과 작품에 대해 조금씩 찾아보고 싶어졌다. 공항에서 ‘배우’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그는 당시 직업을 ‘화가’라고 썼다고 한다. 찾아보니 화가로 불리기를 바라던 그가 지금 14번째 개인전 중이었다. 책에 있는 그림들과는 완전 다른 분위기의 그림 옆에 선 그를 보니 그의 작품 역시 변신을 거듭한 모양이다. 시간을 내어 보러 가고 싶어 진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수채화부터 시작해 스스로 도구와 방법을 연구해 바꾸어 가며 캔버스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그는 이미 화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사라지는 분야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거나 전공자 이상의 지식을 갖춘 일반인도 무척 많다. 저자를 비롯해 무언가에 몰입하고 꾸준히 성취하며 삶을 일구어 나가는 모든 분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