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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카멘친트>> 방랑, 그리고 고향 -헤르만 헤세

by Kelly

이 책을 책잎 책방에서 사 온 후 계속 두었다가 아주 오랫동안 야금야금 읽었다. 아마도 한 달 넘게 걸린 것 같다. 들고 다니기 좋아 계속 넣고 다니면서 조금씩 읽었다. 헤세의 초기 소설이라 거친 면이 있지만 신선하기도 했다. 문장들이 좋아서 읽는 동안 행복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이가 어느 정도 들 때까지의 한 남성이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페터 카멘친트는 니미콘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부분 친척으로 이루어져 카멘친트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4분의 3이나 살고 있는 곳이다. 언제부턴가 그는 산 너머의 세상에 대한 동경을 가졌고 그는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외지에서의 생활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꿈결 같지 않았다. 외롭고 배고픈 시기를 보낸 그는 마음에 맞는 친구 리하르트를 만나고 글을 써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삶이 조금 나아졌다. 리하르트를 잃고 술에 빠져 되는 대로 살기도 했다. 사랑하던 사람, 사랑해 준 사람 모두 결혼을 하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을 떠나 목공의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는 목공의 처남인 몸이 불편한 보피와 우정을 쌓고 결국 그를 데려다가 애써 간호하기도 하는 따스한 마음을 보인다. 그의 죽음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페터는 자연과 고향 사람들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한때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을 모두 잃고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고향을 밟은 페터는 오히려 그곳에서 그동안 그렇게 찾아 헤매던 평안과 안식을 누린다. 오랜 외지 생활에서 남은 것은 소중한 시와 글이다. 다듬어지지 못한 글들은 앞으로 평생 동반자가 되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이 책에는 헤세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는 것 같다. 그 또한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결혼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으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여러 번 읽으면 좋다고 김엄지 소설가가 추천의 글에서 말하고 있다. 문장이 딱딱한 면이 있고 얇은데도 쉽게 책장이 넘어가진 않지만 언제든 다시 펼쳐 읽고 싶은 책이다. 읽는 동안 헤세와 이야기 나누는 기분이었다.


--- 본문 ----


- 내가 어렸을 대부터 생각하고 바라고 간절히 희망했던 것들이 내 눈앞에 물밀 듯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들, 읽어야 할 책이라든가 서야 할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54쪽)


- 무엇보다도 나는 인간들에게 자연에 대한 형제애 속에서 기쁨의 원천과 삶의 줄기를 발견하라고, 가르치고 싶었다. 눈으로 감상하며 여행하고 즐기는 예술, 눈앞에 보이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어 낼 수 있는 예술을 가르치고 싶었다. 산맥과 호수, 푸른 섬을 매혹적이고 힘 있는 언어로 그들에게 말해 주고 싶었고, 그들의 집과 도시 밖에서 얼마나 엄청나게 다채롭고 활력 있는 삶이 날마다 피어나고 넘쳐흐르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149쪽)


- 이제 와서 나의 여정과 삶의 노력들을 돌아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물고기는 물에서 놀아야 하고 농부는 땅을 파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니미콘 마을의 카멘친트는 도시인 내지 세계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나 역시 체득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매사를 질서에 따라 처리하는 데 익숙해졌다. 세속의 행복을 찾으려는 무모한 욕망이 내 의지와는 반대로 나를 다시 내가 속해 있는 고향, 호수와 산 사이의 조그만 구석으로 돌려보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기쁨을 느꼈다. 고향 사람들은 내 덕성과 악덕, 특히 죄까지도 그저 평범하고 혈통에 따른 어떤 것으로 간주했다. 저 바깥세상에서 나는 고향을 잊은 적 있었고, 나 자신을 드물고 이상한 종류의 인간으로 여기곤 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것에 바깥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니미콘 사람들만의 본질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기이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197쪽)


- 그런데 그 많은 방황과 지나온 세월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연 무엇을 얻었던가? 내가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여인은 바젤에서 귀여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나를 사랑했던 여인은 재혼하여 과일과 채소, 씨앗을 팔고 있다. 아버지 때문에 고향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지도 다시 건강을 찾지도 못한 채 내 맞은편 낡은 침대에 앉아, 창고 열쇠를 갖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있다. (198쪽)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HTJcXcTVS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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