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10년 전에 읽고 블로그에 썼다. 강산이 변할 시간 동안 이 책은 표지 그대로 신설학교 도서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전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다시 읽은 이유는 인문학 모임 이번 달 도서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로 된 책을 구입하고 이번에는 영어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것에 밀려 몇 장만 읽고 중단했다가 급기야 급히 한국어 책으로 읽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충격보단 덜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언행에 불쾌함과 놀라움, 그리고 신기함으로 범벅된 신기한 감정을 느꼈다.
앨리스는 언니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채 주변에서 들리는 수많은 잡음들 덕분에 신비로운 여행을 하게 된다. 비록 꿈이었지만 얼마나 신이 났을까? 몸이 커지고, 작아지고, 애벌레와 같은 키로 이야기를 나누고, 제정신 아닌 모자장수와 삼월토끼와 다과를 나누다니. 애벌레의 질문에 대한 앨리스의 답이 재미있다. "넌 누구냐?" "지금은,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는 알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여러 번 바뀌었거든요."(62쪽)
양손에 쥔 버섯 조각을 번갈아 먹어 가며 몸 크기를 조절하는 앨리스는 난생처음 간 이상한 나라에서 적응력이 무척 빠르다. "까마귀는 왜 책상 같게?"라는 모자장수의 황당한 답도 없는 수수께끼에 헛웃음이 나다가도 여왕이 막무가내로 외치는 "목을 쳐라"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왜 아이들 책을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묘사했을까?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은 후 자신은 안전하다는 안심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을까? 잠자는 도마우스의 코에 뜨거운 홍차를 붓는 모자장수와 아기인 줄 알고 안고 도망친 앨리스 품 안에 꿀꿀거리는 돼지는 정말 기묘하다.
이제와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아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우리는 어떤 것이든 상상할 수 있고, 꿈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 나도 꿈속에서 날아다닌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늘을 날아다니던 내 꿈 이야기를 소설로 써 볼까? 이 책을 읽으니 상상력이 꿈틀대는 느낌이다. 이래서 명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