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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정리>> 이 정도면 괜찮다 - 주한나

by Kelly

오랜만에 아무튼 시리즈 책을 읽었다. 작년에 읽은 <아무튼, 달리기>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아무튼 시리즈는 어느 정도의 전문가가 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전문가라기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분이다. 그럼에도 잘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 한다. 나의 경우와 닮아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남아공으로 이민을 갔다가 영국으로, 다시 미국으로 갔다고 나온다. 미국에 아직 살고 있을까? 오랜 외국 생활 중에도 모국어를 잊지 않고 한국어로 책을 내셨다는 게 대단하다. 남편과 자신은 ADHD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원래 정리가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하는 고백이 맨 앞에 나온다. 그렇기에 더 노력할 수밖에 없는 부부의 고군분투가 눈에 그려진다. 남아곡의 넓은 집에서 좁은 영국 집으로, 다시 넓은 미국 집으로 이사를 하며 사람은 적응하기 나름임을 깨달았다.


미뤄두었던 일을 위해 일주일 휴가를 내고도 그 일을 하기보다 눈에 띄는 다른 일들을 하고, 집을 정리하느라 최후의 순간까지 미루는 내용을 읽으며 공감했다. 나도 그럴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해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면서라도 일종의 성취감을 느끼며 결국에는 할 일을 빠른 시간에 해치운다. 그럴 거면 차라리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고 마음 편히 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어쨌든 그것 덕분에 다른 일들을 처리했으니 손해는 아닌 것이다. 대신 빨리 하고 쉬려 했던 1주일의 시간은 무척이나 바빴고, 이후 한동안은 깨끗하고 정리된 집에서 살았을 것이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두려워 집으로 초대하지 않는 저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남에게는 완벽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만 쉽지 않은 것이다. 차라리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은 게 보통의 사람이다. 어느 정도의 포장은 필요한 법이니. 깔끔한 정원을 위해 독한 제초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포장의 단면일 뿐이다. 깨끗한 탕비실 이면에는 누군가의 노력이 숨어있듯 정리된 삶은 대가가 따른다. 샤워 후 정리하고 청소하는 5분이 아깝다면 언젠가 대청소로도 지워지지 않는 오염에 시달려야 한다.


정리란 참 어려운 일이다. 주변 정리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이 생긴다. 같이 체육창고를 사용하는 선생님의 뒷정리를 늘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닮고 싶은 사람이 정리 잘하는 사람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책상 위는 깨끗한 편이지만 어느 한쪽은 항상 카오스인 집과 사무실은 나의 삶과 닮아 있다. 완벽하게 정리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있을까? 정리되지 않은 다른 이의 책상을 보며 이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저자의 생각처럼 완벽하기를 바라기보다 어제보다는 조금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스스로의 족쇄에 차여 자책하며 살게 될까 두렵다.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생각은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지만 정신 건강에는 좋지 않을까, 위안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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