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 고성을 오랜만에 예약했다. 거의 한 달 전에 한 것 같다. 3월 초에 다녀간 후 처음이니 거의 7개월 만이다. 그동안 오고 싶은 생각은 많았으나 주말마다 바빠 틈을 내기가 어려웠다. 예약은 어떤 어려움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고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추석 연휴 동안 수많은 설거지와 요리에도 웃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이날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족을 만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걸 먹었던 시간들도 소중했지만 나를 위한 마지막 휴가 역시 어떤 것과 맞바꿀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시간이다.
아침에 일찍 출발할 생각이었으나 고성에서 쓸 글 파일과 글쓰기 자료를 옮기느라 오전 시간을 다 썼다. 글쓰기 책은 내가 읽고 싶은 책으로 그동안 블로그에 리뷰를 썼던 수많은 글쓰기 관련 책들 속 자료를 옮겨둔 걸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이게 책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안 읽으면 나라도 읽을 요량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남의 이야기들만 잔뜩 적은 게 책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뭐라도 쓰고 성과를 내야 글쓰기 책도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당장 쓸 생각은 없지만 쓰는 동안 큰 자극이 되었으므로 나에게는 소중한 작업이었다.
작업을 마치니 11시 반이었다. 내비게이션을 찍으니 평소에 2시간 40분 걸리던 게 3시간이 훌쩍 넘어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연휴 중간이니 강원도 가는 길이 안 막히는 게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고성 오는 동안에는 항상 논스톱으로 왔으므로 이번에도 도착해서 내리리라 생각했으나, 중간에 화장실을 갈까 말까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휴게소를 가득 채운 차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쉬었을지 모른다. 결국 우리 동네보다 비싼 주유소들 틈에서 조금 저렴한 주유소를 발견하고 기름을 넣은 것 외에는 쉬지 않고 달려 맹그로브에 도착했다. 너무나 익숙한 건물은 나를 반겨 맞이했다.
숙소에 짐만 올려두고, 바다 사진을 찍은 후 배가 너무 고파서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다 그쳐 있어 우산은 없었지만 걸어서 가기로 했다. 거리에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막국수를 맛있게 먹고 바다로 갔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바람이 세게 불어서인지 파도 소리가 평소보다 엄청 컸다. 그 나름대로 멋진 풍경이어서 넋을 잃고 보았다. 사람들이 많았고, 파도를 구경하는 갈매기도 있어서 재미있었다. 카페에서 책을 읽을 요량으로 책과 노트북이 든 가방을 챙겨가긴 했지만 편안한 숙소에서 공짜 커피를 먹는 게 나을 것 같아 돌아왔다.
안마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며 한참 동안 황제 같은 시간을 보내고 많은 사람들 틈에 빈자리 하나를 찾아 앉아서 졸다 깨다 하며 책을 읽었다. 행복이 밀려왔다. 이곳에서의 2박 3일 동안 많은 성과를 얻어야 할 텐데, 그게 걱정이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