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언제 또다시

by Kelly

고성에서의 시간이 저물어 간다. 아침부터 저무는 이유는 오늘 돌아가기 때문이다. 귀한 연휴의 끝자락에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해 놓고 얼마나 설레어했던가. 이 소중한 시간은 일상으로 돌아간 나에게 오랫동안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비를 잔뜩 머금은 우렁찬 파도를 수없이 지켜보았고,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간성과 아야진도 다녀왔다. 비가 왔기 때문이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나는 뚜벅이로 다니던 걸 할 수 없어서 차를 가지고 조금 멀리까지 가 식사를 하고 카페에도 갔다. 뭔가 모를 새로운 활력이 솟는 느낌이긴 했다.


간성에 간 건 쓰고 있는 글의 배경이 될 만한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성군에서 가장 번화한 곳, 한 학년이 두 반인 초등학교를 찾았다. 다른 곳은 거의 한 학년 한 반이었다. 가다 보니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가 보였는데 어쩌면 그 아파트 근처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의 규모가 일시적으로 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가 많이 와서 대충 찍은 사진들 중 쓸만한 게 없었지만 거리의 느낌은 간직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송지호 해변 근처 송심식당이라는 곳에서 짬뽕을 먹었다. 재료 소진이 빠른 것으로 알고 가긴 했지만 식당이 손님으로 가득 차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망설이다 기다리기로 했다. 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니 주인 분이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 사이에 단체 손님이 왔다가 되돌아가기도 했다. 맛이 좋긴 했다.


지나가기만 했던 아야진 해변 입구를 통과해 바다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아야트 카페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필로티에 주차할 수 있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비를 맞지 않을 수 있었고, 2층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멋졌다. 예쁜 식물들이 많아 다음에 그림을 그려볼 요량으로 몇 개 찍었다. 교암의 고즈넉산 해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아야진은 생각보다 활기찼다. 다음에 가족과 같이 오면 색다른 음료도 먹어보리라 다짐하며 커피 한 잔을 시켰다.


계속 비가 왔으나 비를 좋아하는 나는 지속적으로 행복을 느꼈다. 뭘 해도 행복한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이제 돌아가면 수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에게만 충실하고 싶었다. 전에는 숙소에서 사람들이 시끄러울까 봐 안마의자 사용을 자제했으나 어제는 하루 동안 서너 번 앉아 여유를 만끽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귀로 들으며 앉아 파도를 하염없이 보고 있으면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다. 저번에는 노트북을 가져와서도 사용해 본 적 없는 테이블 위 모니터 선을 노트북에 연결해 큰 화면으로 작업한 것도 좋았다. 블루투스 마우스까지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동안 왜 사용을 안 했던 건지 모르겠다. 스탠딩 책상도 내 것처럼 들었다 놨다 했다. 스탠딩 책상의 좋은 점은 서서 파도를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맹그로브에 수없이 많이 오면서 이렇게 알차게 이용한 건 처음이다. 가기도 전에 또 언제 올지를 계획하고 있다. 일정 없는 토요일을 노려 금요일에 와서 하룻밤 또 자고 가야겠다.


한 가지 반가운 것! 내가 사인해서 드린 나의 책 두 권이 이곳에 예쁘게 예쁘게 꽂혀 있다. 보기만 해도 기운이 펄펄 난다. 내 책의 상당 부분이 이곳에서 탄생하고 수정되었다. 또 열심히 써서 한구석을 채우리라 다짐해 본다. 여기에서 그동안 끼적이던 동화, 혹은 소설을 원고지 50매 정도 꾸역꾸역 써서 보탰다. 작품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쓰는 동안 아주 괴롭지는 않았고, 중간중간 피식거리기도 했다. 박지리 작가의 발톱만큼의 문장력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가의 글을 탐하며 읽었다. 그 기운이 나의 글에 조금이라도 녹아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쓰게 될 글쓰기책의 한 부분을 스포해 본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지니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문장의 조건 / 민이언 / 다반 / 2020)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눈을 지니게 되었기를, 나의 모든 여행이 그러하기를 바란다.


900_20251010_204822.jpg
900_20251010_144341.jpg
900_20251010_204828.jpg
900_20251010_125427.jpg
900_20251010_125525.jpg
900_20251010_140824.jpg
900_20251010_125855.jpg
SE-1460879d-a645-11f0-ab12-3bfaaeed3763.jpg
900_20251010_125746.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찾은 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