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읽지 못하고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읽지 않으니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읽고 가겠다고 했다. 명절 연휴 내내 이 책을 짬짬이 읽었다. 분량이 너무 많은데 비해 재미는 있었다. 어렵긴 무지하게 어려웠지만 우주뿐 아니라 역사와 수학, 과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내용을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어 생각보다 고통스럽진 않았다.
오래전 구입했다가 온라인 헌책방에 헐값으로 팔아치운 이 책을 이번에 다시 밑줄 그으며 읽으려고 구입했는데 내지가 누렇게 변하고 아랫부분에 물이 묻었다 마른 흔적이 있는 아주 낡은 책이 왔다. 덕분에 죄책감 하나 없이 밑줄 좍좍 긋긴 아주 좋았다. 노트에 뭔가 적으면서 읽었어야 했는데 밑줄만 긋다 보니 근 800페이지까지 오는 동안 앞에 있는 내용을 잊어버렸다. 이런 심각한 건망증이 있나.
태양계의 행성들을 한 장에서 하나씩 설명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빠른 속도로 도는 수성, 너무나 뜨거운 금성, 사람이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크지만 나는 결코 살고 싶지 않은 화성, 붉은 폭풍 대적반을 가진 목성,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진 얼음별 토성... 학창 시절 이름만 들었던 행성들에 대해 알게 되니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지구에 살고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겠다.
점점 살기 힘든 지구를 떠나 새로운 곳을 개척하려는 인간의 의지는 이해가 가지만 새로운 곳에서 너무나 큰 위험부담을 안고 엄청난 경비를 들여 가며 사느니 지구를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노력이 훨씬 가성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종일관 나오는 진화에 대한 이야기도 창조론적 세계관을 가진 나에게는 하나의 이론처럼 느껴졌다. 과학의 세계이긴 하지만 과거에 살아본 적 있는 사람이 없는 관계로 많은 부분 근거 있는 추측에 의한 주장이라는 게 그 이유이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게 오래전 죽음에 이를 만큼 위대한 주장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것들도 언젠가는 웃으며 이야기할 오해일 수 있다는 사실.
과학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신의 위대함을 느꼈다면 어불성설일까? 이렇게 정교한 우주와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춘 지구,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조금만 더 가깝거나 멀었다면 모두가 종말을 맞을 위대한 지구에서 살고 있음을 감사하며, 보다 살기 좋은 지구를 만들기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혼자만의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