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심사 - 태권도 499회 차

by Kelly

금요일, 연주가 있어 하루 종일 긴장했다가 고픈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왔다. 이제 좀 쉬면서 딸과 데이트나 할까 했더니 도장 가는 금요일이었다.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 들러 빌린 책을 반납하고 도장 근처 카페에서 엄청 졸며 책을 읽다가 도장으로 갔다. 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 예고 없이 심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테이블을 놓고 앉은 관장님, 그 옆의 사범님, 의자에 쭉 앉은 아이들과 매트 위에서 심사를 받는 아이를 보자마자 긴장이 되었다.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살짝 걸터앉아 관람을 하고 있었는데 관장님이 나도 할 거니까 몸을 풀고 있으라고 하셨다.


설마 정말 나도 할까, 싶었다. 그래서 앉은 채 관람만 했다. 아이들 중에는 너무 잘하는 선수 아이도, 실수하는 아이도 있었으나 내 차례가 진짜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팔목과 발목만 깨작깨작 돌리고 있으니 추워서 점퍼를 뒤집어썼다. 옆에 앉은 박 사범님도 춥다고 했다. 한 명씩 차례가 끝나니 박 사범님이 불려 나갔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나도 하는 건가? 요즘 품새보다는 겨루기 발차기만 했던 터라 외던 것도 잊었을까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앞에 섰는데 머릿속이 하얬다. 낮에 연주 전 무대에서 멘트 할 때와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 사범님이 처음에는 7장을 부르셨다가 할 수 있는 것 아무 거나 하라고 했다. 그나마 최근에 금강을 계속했던 터라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긴 했다. 사범님이 3단 필수 품새이니 금강을 하라고 했고, 나는 어설프게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나마 잘했는데 중반 이후 오른쪽에서 기합 하는 부분에서 갑자기 방향이 헷갈려 머뭇거렸더니 사범님이 알려주셔서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학다리 서기에서 균형을 잃어 비틀거렸으나 마무리까지 잘 마쳤다. 너무 창피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수업 후에는 관장님이 태권도하는 마음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셨다. 몸을 별로 움직이지 않아 계속 추웠다. 이런 날도 있다. 언제든 품새를 선보일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늘 하고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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