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여행 둘째 날
거제에서 맞는 둘째 날, 처음에는 욕심껏 많은 곳에 가려고 지도를 보고 그림으로 그려 동선으로 고려해 일정을 짰다. 일단 가장 가보고 싶은 지심도에 가기 위해 장승포에 가서 배를 타야 한다. 검색해 보니 미리 예약하는 게 좋다고 해서 ‘지심도’를 검색해 배편 예약을 했다. 아침을 느긋하게 맞는 바람에 10시 반 배 대신 12시 반 배를 예약하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간단한 요기를 했다. 지심도 다음에는 구조라 해수욕장과 흑진주 몽돌 해수욕장에 가기로 생각하고 포로수용소를 들러 옥포해전 기념공원을 마지막으로 숙소로 향할 생각이었는데 지심도에서 두 시간을 걷고 나와 맛있는 게장 정식을 먹으니 벌써 4시 반이 다 되어 문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포로수용소에 먼저 들렀다. 그런 다음 다시 구조라 해수욕장에 갔는데 시간은 점점 가고 너무나 가고 싶었던 몽돌 해수욕장도 들러야 해서 차 안에서만 보고 그 아래에 있는 학동 흑진주 몽돌 해수욕장에서 밤을 맞았다.
일정을 어떻게 짤까 하다가 그림을 대충 그려 보았다. 원래는 둘째 날 많은 곳에 갈 욕심이 있었는데 아침 시간을 너무 느긋하게 보내느라 일정이 밀렸다. 뱃 시간을 먼저 확인하고 예약한 후 다른 일정을 짜는 게 좋겠다. 배는 8시 반부터 거의 두 시간 간격으로 있었다. 여름의 지심도는 조금 덥고 습할 수 있어 아침 8시 반 배로 들어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심도>
정말 오랜만에 배를 탔다. 2층으로 되어 있는 배이고 위층에 선장실이 있었다. 선원도 한 분 계셨는데 손님이 여섯 명밖에 없었다. 코로나에 조심스러운 마음이라 우리는 반가웠지만 기름 값은 나올지 걱정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선실에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배가 빨리 달리니 바람이 많이 불고 부서진 파도에서 물이 날아와 시원했다. 배가 흔들려 속이 울렁거리긴 했으니 20분 만에 금방 도착해서 힘들진 않았다.
지심도에서는 인어가 우리를 맞았다. 배에서 나오는 방송을 들으니 지심도의 유래가 위에서 봤을 때 마음 심자를 닮아서라고 했는데 지도를 보니 정말 그랬다. 사진을 찍어 걸을 곳을 생각하며 들어갔다. 15 가구 1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했는데 이들은 입구 근처에서 민박이나 음식점 등을 하고 있었다. 들어갈 때 이분들 아니었으면 길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배가 너무 부르고 화장실 가게 될까 봐 아무것도 먹지 않아 죄송했다. 이곳은 한려수도 해상 국립공원 중 하나이기 때문에 휴지도 버리면 안 되고, 화장실에 손 씻는 곳도 없다는 것이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 규정을 만든 것이 감사했다.
동백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해안절벽에 먼저 도착했다. 어느 곳을 찍어도 멋진 사진이 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곳에서는 여성 두 분이 사진 찍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후에는 거의 다른 사람이 안 보여 마스크를 벗었다. 원래는 배 타는 곳에 늦게 가면 다음 배를 타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은 적도 있었다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평일이어서인지 사람 보기 힘들었다. 이곳은 바닷가에 많이 산다는 동백나무가 60~70퍼센트 정도라고 하는데 처음 보는 식물들도 많아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이런 식물은 태어나 처음 보는 거라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지심도에는 일제강점기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뼈아픈 역사를 가슴에 새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나 이 흔적들을 확인하고 다니니 마음 한편이 묵직했다. 원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각 지점마다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구글 플레이스토어가 없는 아이폰에는 ‘지심도’ 앱을 깔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런데 설명을 다 듣고 다녔으면 두 시간 안에 모두를 돌아보기 어려울 수 도 있을 것 같았다.
포진지와 탄약고는 1935년에 만들어졌다고 되어 있었다. 처음에 포진지 셋 중 하나만 보고 갈 뻔했는데 안쪽으로 가니 두 개가 더 있었고, 조금 으스스한 탄약고도 있었다. 그곳을 통과해 섬의 반대쪽에 있는 전망대 가는 길에 입구와 운동장만 남은 지심 분교와 풀로 덮인 활주로를 지났다. 저번에 작가들이 이곳에 방문했을 때 지심 분교는 작가들의 창작 장소로 고려된다고 했는데 그 정도로 넓지도 않고, 아무리 고립되어 글 쓰는 작가라지만 지심도에서 오래 지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때 서른 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녔다는 지심 분교는 지금은 주민들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 전망대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태극기가 게양된 곳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욱일기가 게양되었다는 아픈 역사가 적혀 있었다. 거제도 모자라 지심도까지 들어와 곳곳에 흔적을 남겨둔 그들이 얄미운 마음이 커졌다.
전망대는 사진 찍기에 참 좋았다. 우리는 가는 내내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여기저기에 서서 많이 찍었다. 바다는 정말 어떻게 찍어도 아름다운 이유가 해안선 때문인가 보다. 구름은 시시각각 새로운 그림을 그려낸다.
다시 돌아오는 길도 아름다웠다. 한낮의 여름인데도 나무 그늘이 많아 그렇게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습해서인지 땀이 많이 났다. 시간 안에 다 돌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빨리 걸어 다녀서인지 중요한 곳을 거의 다 다녔는데도 배가 다시 오기까지 20분의 시간이 남아 기다렸다.
<포로수용소>
다음에는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포로수용소로 향했다. 도착하니 이미 5시를 향하고 있었고, 모노레일은 다섯 시 반에 이용 가능할 정도로 여긴 사람들이 좀 있어서 모노레일은 포기하고 공원만 산책하기로 했다. 낮은 산등성이에 만들어진 포로수용소는 우리가 생각했던 진짜 포로수용소가 아니고, 그 터의 일부에 조성하긴 했으나 새롭게 만들어놓은 시설물들이 있었다. 조금 걷다 보면 작은 전시실이 하나씩 나왔다.
지난 학기에 아이들과 625 전쟁에 대해 공부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을 돌아보니 전쟁이 더 마음에 와닿고 실감 났다. 원래 부산에 포로수용소가 있었는데 인원이 너무 많아지는 걸 보고 유엔군은 거제에 포로수용소를 새로 지었는데 이곳에 17만 명이 넘는 포로들이 있었다는 걸 알고 정말 놀랐다. 17만 명이라면 도시 하나 인구와 맞먹는 수준인데 이곳에서 그 많은 포로들을 먹이고, 관리했을 생각을 하니 전쟁도 전쟁이지만 이곳 운영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향하는 바가 다른 군인이었으니 내부적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을까? 실제로 이들은 폭력시위를 하기도 했는데 몇 년 전에 본 영화 ‘스윙 키즈’에서 일부이겠지만 마음 아픈 장면들이 있다.
전시실들을 다 통과하고 나면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곳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곳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당시 상황을 재연해 둔 포로들의 막사와 밥 짓던 곳을 지나 실제 건물이 있었던 흔적이 남은 곳을 보았다. 역사의 한 부분을 만날 수 있는 거제의 포로수용소는 거제를 방문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러보면 좋겠다. 아이들에게도 전쟁의 참혹함과 당시 우리를 도와 참전했던 분들의 고마움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몽돌 해변>
포로수용소를 나오니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전날 그 시간은 환했는데 흐려서인지 저녁이 빨리 오는 것 같았다. 구조라 해변을 먼저 갔는데 몽돌이 아니어서 그 아래에 있는 흑진주 몽돌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사실 대학 시절 엠티의 추억을 더듬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거제로 온 것이어서 몽돌 해변을 놓칠 수는 없었다. 내 기억에 꽤 넓은 몽돌밭이었는데 학동 몽돌해변은 그리 넓지가 않아 아마도 내가 갔던 그 해변은 아닌 것 같다. 몽돌 해변이 하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동쪽 해안을 따라 여러 개가 있었다.
몽돌은 여러 색이 섞어 있었는데 정말 흑진주처럼 까만 몽돌도 많았다. ‘몽돌’하면 정말 동글동글한 느낌이 든다.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둥글둥글했다. 파도로 들어온 바닷물이 나갈 때 정말 자글자글한 소리가 나 신기했다.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워낙 넓은 곳이어서 거리가 멀었다. 오늘 다닌 곳 중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은 없었다. 거제는 일일 확진자 10명으로 내가 살던 곳보다는 훨씬 안전하게 느껴졌다.
몽돌해변 한구석 표지판에 한 미국 아이가 몽돌 두 개를 가져갔다가 어머니께 혼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낸 사연이 적힌 편지가 있었다. 몽돌은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절대 지니고 나가면 안 된다. 소중한 자연이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니 조금 추울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발걸음이 안 떨어져 캄캄해질 때까지 앉아서 파도소리를 들었다. 밤이 되니 파도가 더 세졌다. 바다에 돌로 물수제비를 뜨는 사람, 발을 물에 담그고 웃으며 소리 지르는 아이들을 보며 평화롭고 느긋한 저녁을 즐겼다.
* 원문: https://m.blog.naver.com/kelly110/222468025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