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마지막 날
전날 아침을 너무 늦게 시작해 마지막 날은 서둘러 챙겼다. 집에 올라가는 길에 바로 근처에 있는데 전날 가보지 못했던 옥포대첩 기념공원을 갔다가 바로 폐왕성과 청마기념관으로, 그리고 통영으로 넘어가 동피랑을 볼 예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유치환이 태어난 거제의 청마기념관과 이사 가서 지냈던 청마 문학관 두 곳의 생가가 나뉜 줄을 모르고 통영에서 문학관을 갈 생각에 거기서 점심을 먹을까 했었는데 가다 보니 둔덕에 있는 폐왕성인 둔덕기성 바로 옆에 기념관이 있었다. 작가들이 들렀던 곳은 바로 통영이 아닌 거제에 있었던 그가 태어난 생가 옆 기념관이었던 것이다. 둘 중 어디로 갈까, 둘 다 가 볼까 하다가 어차피 둔덕기성 바로 옆이면 온 김에 기념관을 먼저 보고 시간이 되면 동피랑 근처에 있는 문학관도 가볼까 했다. 8시에 태권도도 가고 싶어서 조금 일찍 출발해서 간 건데 가다 보니 둘러볼 곳이 너무 많아 시간이 지체되었다.
<옥포대첩 기념공원>
옥포대첩 기념공원은 숙소에서 6분 거리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해 공원까지 들어가 기념비를 보지는 못했고, 전시관에서 이순신 장군의 유물과 기록물을 보고 밖으로 나와 4분의 1로 축소해 만든 거북선과 판옥선을 보았다. 학익진에 대해 소개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책이 인상적이었다. 해전으로 임진왜란과 정묘재란을 끝나게 한 동기를 만들어준 성웅 이순신 장군에 대해 살펴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거북선을 보고 더 위로 계단을 따라 올라갔더니 갑자기 바다에서 거대한 배가 지나가는 게 보여 놀랍고 신기했다. 저 거대한 하나의 도시 같은 배가 움직이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배가 다 지나갈 때까지 구경하고 내려가 바닷가 보이는 곳으로 갔더니 거대한 그네가 있었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남편이 그네 타는 걸 찍다가 다시 차에 올랐다.
<둔덕기성(폐왕성)>
둔덕기성은 고려 의종이 무신의 난을 피해 거제로 와 머물렀던 곳으로 작가들의 책에 쓰여 있어서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차가 가파른 산길로 들어서면서 되돌아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꼬불꼬불 산길을 한참 달려 올라가니 주차장이 나왔다. 둔덕기성은 신라시대에 먼저 쌓았던 성인데 고려 18대 왕 의종이 무신난에 쫓겨 와 3년을 살았다고 한다. 성이 신라 양식과 고려 양식이 함께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들이 이곳을 찾았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번에 찾은 이곳은 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다 둘러보지는 못하고 저장고와 석환군만 보고 내려왔다. 운동화로 갈아 신었는데도 반바지 차림이라 풀숲을 헤치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인적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쫓겨 와 죽는 꿈을 밤마다 꾸었을 의종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석환군은 산 정상에 가까운 성에서 적이 올 때 전지기 위해 큰 몽돌들을 모아둔 곳이다. 당시에는 그 높은 산성 주변에서 농사를 짓거나 말을 키우기도 하고 임금과 마찬가지로 불안했던 군신들은 임금이 건넌 견내량 주변에 살았고 반 씨 성을 가진 장군의 후손들이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다는 말이 안내판에 씌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거제 출신 지인 중에 반 씨 성을 가진 분이 있다. 그분이 임금을 따라 내려가 터를 잡고 살았던 장군의 후손이라 생각하니 역사가 바로 옆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청마기념관>
둔덕기성을 내려와 청마기념관으로 갔다. 유치환 시인은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통해 알고 있긴 하지만 그의 생애는 잘 몰랐는데 일제강점기 동안 시를 쓰기도 하고 교사 생활을 하다가 만주로 피신하기도 했다. 625 전쟁 중에는 종군기자 활동도 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 놀라웠다. 여류 시인 이영도와의 로맨스로 유명하여 우체통이 기념관 앞에 있었는데 그에 대한 사건들이 녹아 있는 통영의 청마거리는 시간이 부족하여 거닐어보지 못한 게 아쉽다.
<동피랑>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동피랑이다. 그곳에서 해산물이 든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갔는데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벽화로 유명한 동피랑은 언덕배기에 있었는데 차를 가지고 갔다가 돌아 나오면서 진땀을 흘렸다. 내려와서 보니 근처에 공영주차장이 있었는데 그런 줄 알았으면 주차를 하고 올라갈 걸 그랬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음식점은 인산인해여서 근처에 있는 다른 곳에서 점심을 먹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여섯 시간이 걸린다고 나와 가고 싶었던 태권도는 못 갈 것 같았다. 하지만 말로만 듣던 동피랑을 걸어 보고, 맛난 점심을 먹어서 후회는 없었다. 동피랑은 젊은이들에게는 좋을 것 같은데 우리는 별 감흥이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걱정되는 마음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통영 바닷가 풍경에서 오히려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졌다.
이번에 음식을 몇 번 사 먹었는데 먹는 것마다 맛이 좋고, 가격이 저렴하고, 양이 많아서 놀랐다. 거제의 인심이 느껴졌다. 거리도 정말 깨끗했고, 들르는 곳마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남편은 첫날 갔던 횟집이 맛있었다 했고, 나는 둘째 날 들렀던 게장정식 집이 좋았다. 마지막 날 먹은 굴전이랑 멍게비빔밥도 맛있었다. 해산물을 워낙 좋아해서 실컷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거제에 대한 인상이 좋게 남아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둔덕기성을 지나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께서 어렸을 때 거제의 한 분교에서 근무하셨던 생각이 났다. 어렴풋이 그때 한 번 들렀던 것 같다. 어렴풋한 기억에 학교 이름을 내비게이션에 찾아보니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분교였으니 이제는 폐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들렀으면 사진이라도 찍어 아버지 보여드렸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마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아마도 오래전 그때의 흔적을 찾긴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