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ly Feb 10. 2021

작가 조정래의 삶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

  오래 전부터 독서 목록에 있었던 조정래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방대한 연작물을 내고 생전에 두 개의 문학관이 지어진 최초의 작가이다. 그가 비교적 최근에 쓴 ‘정글만리’ 외에는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지난한 그의 작업 과정과 고난의 사건들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전국 대학생들의 84개의 물음이 바로 이 책의 각 꼭지다. 그는 그 질문들에 친절하게, 때로는 질문을 수정해 주기도 하면서 답을 썼다. 경어체로 씌어 있고, 청소년에게 강의 하듯 어렵지 않은 말로 되어 있어 책이 술술 읽혔다.


  지리산으로, 만주로 취재여행을 다니며 취재수첩은 빼곡히 기록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과 나이, 인물 간 관계 외에는 어떤 구상도 적지 않았다는 작가는 가히 천재적이다. 머릿속에 이미 내용이 모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책 한 권을 쓰더라도 뼈대를 그리고 줄거리를 미리 적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열 권 분량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담는 독특한 작업방식을 지녔다. 그 이유는 취재를 하면서 이미 머릿속으로 구상을 시작하고, 글을 쓸 때쯤에는 모든 것이 갖춰져 바로 쏟아내기 때문이다. 실제 인물의 이름은 잘 외우지 못하고 여러 번 만나도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때도 있지만 자신의 수많은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기억하는 작가의 선택적 기억력이 존경스럽다.


  시인과 결혼하여 서로 존중하는 부부 사이로 지내는 것이 귀감이 된다. 수많은 세월 동안 시계처럼 일정하게 매일 글을 쓰는 노동을 했다는 것은 그의 성실함을 보여준다. 부친으로부터 ‘주색잡기를 멀리 하라’는 말을 듣고 평생 스스로 만든 글감옥에서 행복하게 글을 써 온 그의 삶을 놓고 누군가는 재미없어 어떻게 살았나,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누구보다 재미있는 생을 살았노라고 자부한다.


  책을 읽으며 태백산맥을 헌책이나마 전집으로 구입해 두었다. 며느리와 아들을 필사 시킨 열권의 책을 한 권씩 읽어보려고 한다. 오른손 마비, 탈장, 종기 등 각종 직업병에도 소설 쓰기를 최우선으로 여겼던 작가의 숨결이 느껴질 것 같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cast/206415

매거진의 이전글 책을 태우다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