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빵 햄 샌드위치 (찰스 부코스키)
요즘 부코스키라는 작가에 빠져 있다. 청소년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지만 무언가 그의 글에는 매력이 있다. 아니, 작가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이 책은 소설 <우체국> 대신 빌렸다가 순식간에 읽었다. 우체국보다 뒤에 쓰였지만 그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의 삶의 초기 기록이다. 물론 이 책은 소설이고 치나스키라는 분신을 등장시켜 이야기로 전개된다.
태어난 후 첫 기억부터 힘없던 어린 시절까지, 그는 그저 안쓰러운 존재였다. 읽다 보니 생각보다 아버지는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현 방법이 너무 억압적이었고, 폭력적이었던 것이 문제다. 부자들이 사는 학교에 억지로 보내고,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바랐지만 치나스키는 약했던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사귀며 센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그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관심이 커지게 되었고, 그의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묘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소년들이 겪는 사춘기는 이런 것일까? 아마도 전부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청소년 시절 가끔 남들보다 뛰어난 적도 있지만 여전히 소외되어 있고, 나쁜 짓을 일삼기도 하며 일탈을 벌인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에 호밀빵이라는 말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많다. 나약한 엄마와 과격한 아빠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자랐다는 의미에서 지었다는 설도 그럴듯하다. 치나스키는 힘이 조금씩 세어지면서 아버지의 폭력에 반기를 들고, 술을 시작하면서 그의 기행은 도를 넘는다. 하지만 동물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눈 뜨고 볼 수 없어하기도 하고,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에 대한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들은 ‘착한 사람’으로 기억하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에 대해 썼을 것이다.
여성편력이 심했다는 그는 이 책에서는 짝사랑 혹은 혼자만의 상상으로 일관하는데 그 내면에는 너무 심한 피부병으로 인한 외모에 대한 자신감 상실, 그리고 대공황의 틈바구니에서 일하지 않고 보조금에 의존하는 가난한 가족으로 인한 자기 비하가 한몫했을지 모른다. 자신보다 나아 보이는 아이들과는 먼저 거리를 둔다. 하지만 그가 절실히 사랑했던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책과 글쓰기다. 아버지의 온갖 구박 중에도 이불속에서 독서등을 켜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었는데 매일 한 권씩 읽을 정도로 빠져 지냈다. 타자기로 글을 쓰기도 하고, 글 쓰는 친구와 절친이 되기도 한다. 그가 작가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아버지가 그의 짐과 작품들을 버리면서 그는 독립을 하게 된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성실하지 못했던 일꾼인 그는 오직 글쓰기만을 염두에 둔 채 방탕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밑바닥 삶에 대해 이렇게 적나라하게 쓴 작가가 또 있을까? 어릴 적부터 행복한 적 거의 없었던 그는 세상을 향한 독을 품고 자랐다. 세상의 질서를 따르는 걸 싫어하고 자유를 갈망하며, 폭력도 서슴지 않고, 말 그대로 내키는 대로 살았던 그에게 왜 사람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어쩌면 자신들은 할 수 없는 일탈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내면에 숨어있는 하이드적인 면을 숨김없이 드러낸 글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을까? 그도 아니면 그저 자극적인 이야기에 끌려서일까? 어쨌든 나도 새벽에 일어나 다시 책을 잡을 정도로 다음이 궁금해져 순식간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글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작가의 간절함이 나를 끌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