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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Feb 15. 2021

바람 몹시도 분 날, 수원 화성

갑작스런 기차여행

  전날 밤 갑작스레 계획한 기차여행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자다 깨다 했다. 버스를 확인하니 배차 간격이 커 남편에게 부탁해 출근길에 잠시 역까지 태워 달라고 했다. 바쁜 월요일이라 툴툴거리긴 했지만 늦지 않게 챙겨 역에 내려주고 갔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바쁜 발걸음. 어제 예매한 표를 바꾸고 삼각 김밥을 사 카페에 앉아 커피랑 먹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굳은 얼굴,  멋진 노래 사이에 들리는 마스크 착용 방송. 나올 때 보니 외부 음식 반입 금지였다. 수원 가는 여러 방법 중 기차를 택한 건 책을 읽기 위함이었다. 얇은 책 키 작은 프리데만 씨와 읽고 있던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슬립 원서를 가지고 가방에 넣었다. 비 오는 아침, 컨디션이 좋은 건 아니지만 가방만큼 마음은 가벼웠다. 기차로 가는 도중 탁한 물이 고인 고랑에서 먹을 것을 찾는 애처로운 백로를 보았다.


  기차에서 내려 출구를 잘 못 나갔다 다시 나와 900번 버스를 탔다. 맛집 검색하다 버스를 반대 방향에서 탄 걸 한참 후에 알았다. 할 수 없이 경희대에서 회차하여 다시 가야 할 듯했다. 수원 시내 구경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 기사님이 기름 넣으러 간다고 내리라 해서 내려 경희대 입구 사진을 찍고 다른 버스 오길 기다리는데 900번이 다시 왔다. 잠깐이었지만 머리카락 사이를 뚫고 전해지는 찬바람에 모자 달린 패딩을 입지 않고 얇은 코트만 걸친 걸 후회했다. ‘집에서 편히 책이나 읽을 걸 왜 왔나, 하필 추운 날을 골라서.’ 그래도 버스 안은 따뜻했다. 10시에 도착 예정이었던 화성에 11시 넘어 갈 듯 싶었지만 괜찮다. 이것도 모두 추억이 될지니. 


  수원의 첫 인상도 나에게는 추운 기억이다. 임용고시를 치러 왔던 곳이고 이어 면접을 보았던 데다. 두 날 모두 너무 추웠고 처음 자는 여관방은 낯설었다. 집 떠난 설움과 함께 수원의 추위는 아직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후로는 수원이란 곳에 수원역 예전 애경백화점(AK플라자) 외에는 거의 가 본 적이 없다. 당연히 화성도 처음이다. 화성을 둘러보고 싶어진 건 6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오기 때문인데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 무척이나 피상적인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6학년을 맡게 되어 내가 밟아 보고 생생히 전하고 싶어 내일부터 시작되는 출근  전에 잠깐 들른 것이다.          


1. 장안문에서 서장대를 지나 팔달문에 도착해 행궁으로


  11시. 4800보. 한 시간 버스 투어를 마치고 다시 수원역을 지났다. 화성 도착도 전에 거의 5천보가 되었다. 아, 반가운 햇살이여! 장안문에서 출발하여 서장대 쪽으로 걸어갔다. 한 시간 남짓 거리라고 해서 얕봤는데 오르막이라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팠다. 서포루를 지났다. 6900보. 등에선 땀이 나는데 바람이 차 귀를 계속 막으며 걸었다. 팔달문에 도착해 행궁으로 가는 길, 음식점 거리를 지났다. 행궁 가려다 배가 고파 수제비를 먹으러 와 앉았다. 오랜만에 등산을 해서인지 온 몸에 힘이 없었다. 남은 반쪽을 생략하고 그냥 올라갈까 고민이 되었다. 일단 먹고 행궁 가서 생각해 보아야겠다. 춥고 바람 불어서인지 거리가 스산했다. 사람도 없고 문 닫은 가게도 많았다. 만 천 보.  행궁은 홍상수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주인공 남녀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리 좋진 않았지만 영화 속 장소들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지동시장, 팔달문시장, 영동시장……. 여러 시장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영동시장 2층, 이팔청춘이란 이름이 예뻐 들어왔더니 월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많이 닫았다. 나가려다 카페 45를 발견했다. 점원은 젊은데 손님은 대부분이 마음만 이팔청춘인 머리 희끗희끗한 분들이었다. 행궁에서 눈물을 너무 많이 쏟아서인지 기진맥진이다. 사실 엉엉 울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뭉클하다. 일제에 의해 그 모습을 잃어버렸던 행궁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된 것이 컬러로 남아 있는 정조의 ‘명니의궤’ 덕분이라니. 6학년 교과서로 '화성성역의궤'에 일한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기록되었을 정도로 자세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명니의궤는 처음 들었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기록의 중요성을 알았던 정조로 인해 복원 중인 행궁은 그 모습보다 얽힌 이야기가 더 감동적이다. 처음에 그 사정을 모르고 들어갔을 때는 입장료 4000원이 아까웠으나 이제 전혀 그렇지 않다. 정조대왕 만세!



2. 팔달문에서 방화수류정을 거쳐 장안문으로


  반대쪽 돌아가는 길을 포기할까 하고 팔달문에서 잠시 망설였다. 이미 만 보를 넘겨 다리에 힘이 없고 온 몸이 천근만근이어서 여기서 이만 역으로 가는 버스나 택시를 탈까 했는데 시장이 나를 붙잡았다. 카페에서 성벽이 보인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봄이나 가을이면 정말 좋았을 이 길이 겨울에는 너무 춥고, 여름에는 더울 것 같다. 봄이나 가을에 다시 오면 좋겠다. 하지만 때때로 쉬어 가며 계속 걸었다. 언제 다시 화성에 오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바람이 너무 불어 춥고 험난했던 여정. 몇 군데에서는 바람에 몸이 날려 가는 줄 알았다. 한참을 걷다가 성벽 아래에서 두 신사 분이 멋진 연을 날리고 있는 게 보였다. 연날리기는 좋은 날이었다. 방화수류정에서는 내려가는 길을 잘못 찾아 가시나무와 덩쿨이 우거진 좁은 길로 들어가 옷에 나뭇가지가 잔뜩 붙었다. 가다 보니 막다른 길이어서 다시 올라왔다. 긁힌 곳 없어 다행이었지만 옷에 붙은 나뭇가지와 가시를 빼는 데 한참 걸렸다. 3시 10분 21000보. 기진맥진한 데다 손가락과 온몸이 꽁꽁 얼었다. 그래도 한 바퀴 다 돈 성취감만은 정말 컸다.      


  오후 5시. 24000보. 집으로 가는 기차에서 하루 종일 떨며 걸어다니느라 고생 깨나 한 나는 바람 부는 추운 성벽에서 보초 섰을 조선의 병사들을 생각했다. 그들을 위한 온돌방을 마련했던 정조의 마음 씀씀이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 대한 효심으로 마음이 훈훈해졌다. 기록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위대한 정조의 기록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수원은 참 복 많은 곳이다. 여행은 돌아오는 맛이라 했던가. 소박한 나의 집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 나의 여정: 장안문 - 화서문 - 서장대 - 팔달문 - 점심식사(수제비) - 화성행궁 - 남수문 - 지동시장 - 봉돈 - 동포루 - 창룡문 - 방화수류정 - 장안문 (보통은 팔달문에서 시작하여 행궁에서 끝내는 듯하다.)


서북각루
봉돈
행궁 안
바람 몹시 불어 연 날리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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