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정말 소중한 친구가 한 명 있다. 우리집 막내는 엄마의 유일한 친구라고 알고 있다. 사실 그게 맞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게 떠나와 살아온 세월이 더 많아져 이제는 이곳이 고향이 되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고, 유일하게 이 친구만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와 친구 남편을 이어준 사람이 바로 나였다. 부부가 너무 아름답게 사는 모습에 나까지 흐뭇해진다. 그럼에도 자주 만나지 못한다. 천 리 길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친구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가는 길에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곡성’을 떠올리며 그곳에 실제로 가 보고 싶어 들렀다. 영화 때문에 무시무시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실제로 굉장히 귀엽고 아기자기한 곳이었다.
곡성 영화를 두 번이나 보았다. 무섭고 잔인하기까지 한데 그래서인지 인상 깊게 남았다. 영화와 너무 잘 어울리는 전라도 말투. 이 영화로 ‘무엇이 중헌디?’라는 대사가 한동안 유행했었다. 사실 지도를 열고 친구가 있는 진주까지 운전을 해 내려가는 동안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세종 시와 곡성을 비롯한 다른 곳들을 둘러볼 생각으로 출발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운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도시를 보자니 그날 안에 친구에게 못 갈 것 같아 속도를 내었고, 다른 데는 못 가도 곡성은 꼭 보리라는 생각으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휴게소에서 오랜만에 라면이랑 충무김밥도 먹고, 버터구이 옥수수도 먹었다.
한참을 달려 오후가 되어서야 곡성에 도착했다. 지도에는 금방일 것 같아 보였는데 가도 가도 끝없는 산과 들이 펼쳐져 있어 결국 반나절이 다 걸린 것이다. 가는 길에 어찌나 바람이 많이 불던지 그때 몰던 경차가 낭떠러지 아래로 날아가 떨어질까 걱정이 될 정도로 흔들렸다. 하지만 무사히 도착했던 곡성의 풍경이 영화 그대로여서 후회하지 않았다.
곡성 입구에서 ‘한국 관광 100년 베스트 그곳, 희망의 도시 곡성입니다’라고 씌어 있는 표지판이 보였다. 곡성은 시가 아니라 군이라는 걸 표지판 보고 상기했다. 키가 크고 쭉쭉 뻗은 가로수 길이 나를 반겼다. 영화에서 나왔던 주유소처럼 생긴 곳도 보였다. 어찌나 반가운지. 곡성 경찰서도 그 앞 가게 풍경도 여러 번 와 본 곳인 것처럼 낯설지 않았다. 오후 늦게여서인지 원래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것인지 거리가 한산했다. 영화 속 장면 중 있었던 것 같은 건강원도 보였다. 조금 들어가니 ‘추억의 만화 길’이 나왔다. 귀여운 글씨와 그림들이 나를 유혹했다. 늦어도 내려서 보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셔터를 누르며 생각보다 길지 않은 벽화 골목을 누볐다. 검정고무신 캐릭터들이 정겨웠다. ‘우리집’ 간판이 붙은 집도 보였다. 누구의 우리집일까? 화장실이 급한데 들어갈 곳이 마땅치 않아 공공 건물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 일을 마쳤다. 안에 계시던 분이 오랜만에 본 관광객이었는지 유심히 쳐다보셨지만 말은 하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듯 안녕히 계세요, 하고 인사하며 나왔다.
거리를 걷다 보니 왠지 모두 영화에서 보았던 집들 같아 보였다. 겨울이라 오랜만에 슬레이트 지붕 끝에 조롱조롱 달린 예쁜 고드름도 보았다. 영화의 한 장면인 읍내 파출소도 보여 너무나 반가워 한참을 바라보다가 벌써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어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이 글을 쓰며 다시 곡성을 검색해 보니 영화 촬영지인 외지인의 집이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주변에 한옥마을과 강빛마을, 그리고 섬진강 기차마을과 천문대도 있었다. 다음에 시간을 내어 다시 가 보고 싶다.
곡성에서 친구네가 있는 진주까지 지도 상으로는 1센티미터였는데 실제로는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꼬박 달려야 하는 1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이었다. 바람에 차가 휘청대고 오랜만에 느끼는 속도감에 무섭기도 했지만 시야가 탁트여 시원하기도 했다. 친구 집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몇 년만에 본 것인데도 엊그제 만났던 것처럼 친근했다. 친구가 끓인 맛난 매운탕을 먹고 친구 남편(어릴 적 교회 오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안방에서 친구랑 둘이 자고 미안하게도 남편이 거실에서 잠을 잤는데 아침에 주방에서 부스럭거리며 음식 만드는 소리를 듣고 내가 일어나려고 하니까 친구가 자는 척하라고 했다. 그렇게 늦잠을 자고 있으면 남편이 아침을 차려준다고 해 정말 부러웠다. 그 이야기를 집에 돌아와 했다가 면박을 받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친구의 여유와 용의주도함이 귀엽다. 결국 아침에 친구 남편이 손수 요리한 맛있는 떡국을 함께 먹었고, 친구와 남해 독일인 마을에 가 산책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아주 어렸을 적 3년 동안 다녔던 초등학교를 발견했다. 낮은 돌담까지 그대로였지만 현재는 학교가 아니었고 주변도 모두 바뀌어 있었다.
친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사실 올라오는 길에 미리 예매해 두었던 독주회까지 보러 갔는데 길이 막혀 간발의 차이로 인터미션 후 2부 순서마저 놓쳐 밖에서 보다가 결국 앙코르 때 연주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짧고 피곤한 여정이었지만 친구와 가족 모두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랜만에 곡성 영화나 다시 한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