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대신 욕실

by Kelly

방이 좀 더 많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을 오래전부터 가져왔다. 작년엔가 이사 갈 뻔 한 일도 있었지만 입주한 후 8년째 같은 집에 살고 있다. 그전에 자주 이사 다니던 것에 비하면 마음이 편하긴 한데 아이들이 다 크니 좁은 느낌이 있었다. 조금 오래된 역세권 아파트로 이사 가는 건 어떤지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오래된 아파트에 가는 것보다는 우리 집을 리모델링해서 예쁘게 해 놓고 살면 좋겠다고 막내가 말했다. 비용 면에서나 품에서나 괜찮은 방법이겠다, 싶은 생각에 그때부터 인테리어를 어떻게 바꿀까 하는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름 대면 모르는 이 없을 만한 곳들을 돌아다니며 견적을 내었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사 가는 게 아니라 살면서 집을 바꾼다는 게 엄두가 안 났다. 처음에는 싱크대와 도배도 할까 하다가 결국 가장 바꾸고 싶은 아이들 욕실만 하기로 했다. 욕조가 있어 키가 다 커버린 아이들이 욕조 안에서 샤워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려 욕조를 떼고 파티션을 설치해 주고 싶었다. 건축을 전공한 아들이 욕실 구상도를 그렸는데 너무 예뻐서 이런 식으로 하면 얼마나 드는지 알아보았다. 욕실 하나에도 가격이 높았다. 계약할 뻔한 동네 인테리어 가게에서 하기로 마음을 먹은 날 거리에 붙은 플래카드의 '타일'이라는 말이 눈에 딱 들어왔다. 적힌 금액이 하려고 했던 가격의 1/3밖에 안 되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대형 매장이 있는 타일 전문 가게였다.


조금 일찍 퇴근을 하고, 건강검진차 휴가 중인 남편과 관심 많은 아들을 데리고 매장으로 가서 타일과 도기, 수전과 거울, 그리고 장을 골랐다. 파티션은 브론즈로, 수전과 장은 검정으로 했다. 타일도 약간 연한 회색 옆면과 진회색 바닥으로 선택했다. 줄눈도 비둘기색이나 진회색으로 하기로 했다. 수전이 검정으로 나오는 건 처음 알았는데 생각보다 예뻐 보였다. 거울은 테두리에 불빛이 나오는 둥근 것으로 골랐다. 아들이 어찌나 세심하게 고르는지 같이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옵션을 바꾼 덕에 금액이 조금 올라가긴 했지만 처음에 들렀던 가게들보다는 거의 반 정도 되는 돈으로 할 수 있어 기뻤다. 무엇보다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집에 오는 길에 음식점에 들렀는데 화장실 인테리어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화장실 수리하려니 타일만 보이는 게 신기하다. 집에 들어오다 우리 집 엘리베이터 바닥에도 타일이 깔린 걸 처음 알았다. 오는 길에는 우리 아파트 상가에 인테리어샵이 있는 걸 보았다. 그전엔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 관심을 가지니 보인다는 게 정말 희한하다. 공사하는 사흘이 조금 힘들겠지만 바뀐 후의 모습이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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