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재량 휴업일 날 남편은 출근을 하고 토요일에는 가족 식사 약속이 있어 강릉처럼 멀리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가지 못하고 임진각에 다녀오기로 했다. 한 번도 타본 적 없었던 경의선을 타 보고 싶기도 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다녀왔던 임진각이 어떻게 변했을지도 궁금했다. 추운 겨울에 갔을 때도 나무는 없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걸기 좋은 산책로를 기대했던 게 잘못이긴 했지만 공원인데도 나무가 너무 없어 아쉬웠다. 아니면 이번에 차를 가져가지 않아 내가 그런 곳만 걸어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조금만 더워지면 돌아다니기 힘들 것 같다,
경의선이 임진각까지 간다는 것만 듣고는 차 시간을 검색하니 대부분 문산이 종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평일은 두 번 휴일이나 주말은 네 번 임진각에 가는 것이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차 시간을 확인하고 탔어야 하는 건데 오랜만에 아이들 밥을 챙기고 나오려고 조금 늦었더니 첫 차가 가버렸다. 그래서 문산에 내린 김에 평화시장을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 타 본 경의선은 창밖 풍경이 예뻐서 지하철처럼 답답한 느낌이 적었다.
평화시장은 바로 역 근처였는데 생각했던 장터 느낌의 시장은 아니었다. 묘목이나 화분을 파는 곳이 많았고, 우리 동네에도 있는 커피 가게나 음식점들도 눈에 띄었다. 조금 가다 보니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갈까 하고 검색했더니 너무 많이 기다려야 해서 바로 택시를 탔다. 미리 검색한 맛집에서 내려 먼저 식사를 했다. 파주는 두부가 유명해서 두부전골을 시켰는데 맛이 좋았다. 원래 두부 짜글이란 걸 먹어보고 싶었는데 홍고추 표시가 두 개라 너무 매울까 봐 못 시켜서 아쉬웠다. 다음에 가면 그걸 먹어야겠다. 그곳을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한참을 걸어 임진강역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인도가 따로 없어 조금 위험해 보였다. 평일이어서 차가 많이 다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가는 길에 가 볼까 했던 카페가 있었다. 들어갈까 하다가 일단은 임진각을 먼저 보고 카페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속 걸었다. 임진강역은 아주 작은 역이었지만 새로 지어 내부가 아주 깨끗했다. 차 시간을 보니 5시 15분에 문산행이 출발한다고 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혹시나 빨리 둘러보게 되면 다시 택시나 버스를 타고 문산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나왔다.
임진각 가는 길에 625 전쟁 납북자 기념관이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별 기대 없이 간 것이었는데 1층 특별전시를 들어서면서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암울했던 해방 이후부터 전쟁까지의 예술인과 언론인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그들의 작품과 누렇게 변한 저서들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당시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사람들, 검사, 의사, 문인을 포함한 인텔리와 총알받이로 쓸 청년들을 억지로 데리고 북으로 갔다는 사실을 왜 지금까지 생각지 못했을까? 1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그들에 대한 노래였다니... 이곳에 들르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몰랐을 진실들이 충격적이었다. 갔던 이들 중에는 남한군에 잡혀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돌아오신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순식간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아들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혼자 남은 아이들을 키우기도 하며 힘겨운 삶을 살았다. 인터뷰 영상들을 보며 오열했다. 그곳에서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있었는데 어찌나 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전쟁의 비참함은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 간의 이별로 남았다. 이산가족 찾기 영상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는 한 할머니의 고백이 마음을 찔렀다. 가족을 만난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다고 한다. 이제 거의 70년이 지나 당시 가족 잃은 분들은 연세가 너무 많거나 돌아가셨다. 가슴에 묻고 살아온 아버지, 아들, 동생, 남편을 향한 그리움은 기념관을 통해 앞으로도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그곳을 나와 임진각으로 걸었다. 오래전에 보았던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그대로였지만 놀이기구나 새로 생긴 건물들은 낯설었다. 원래 있었는데 몹시 추운 날 잠깐 들렀던 거라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놀이기구가 있어서인지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많았다. 임진각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북한 쪽을 바라봤는데 별건 없었다. 1분 정도 남았을 때 자신도 보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망원경을 양보하고 내려왔다. 독개다리에도 갔다. 그전에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가다가 멈추는 다리다. 지하 벙커도 갔는데 들어가면서 벙커에서 일하기 시작한 부사관 아들을 떠올렸다. 좁고 불편한 그곳에서 전쟁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많이 걷느라 피곤하긴 했지만 납북자 기념관 덕분에 의미 있는 하루였다. 돌아오는 열차에서 책을 읽으며 깜박 졸았다. 집에서 밥을 먹고 다시 태권도에 가서 땀을 무척이나 흘렸다. 몸을 많이 움직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