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철들게 한 아이들

by Kelly

재작년 제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유난히 사교성이 좋던 분위기 메이커 소녀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제자는 올해 학생회 일을 맡았다고 했다. 사실 재작년 한 해는 내 교사 인생의 고비였다. 일은 너무 많았고, 장난꾸러기들이 다 모여있었던 해이다. 교사 생활을 그만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기를 여러 번. 학교를 옮긴 첫 해여서 스스로가 적응해야 했고, 6학년인데도 맡은 업무가 많아 늘 시간에 쫓겼다. 그때는 너무 얌전하고 착한 아이들과 장난꾸러기들이 양분되어 있었다. 남자 친구들은 어렸고, 여자 친구들은 조숙해서 서로 어울리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딱히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없었는데 늘 분노 게이지가 높았다고나 할까? 실제로 학기 초 학급 집단 상담 후 상담 선생님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분노 수치가 높다고 하셨다.


그 해의 아이들에게 더 잘해 줄 걸, 하는 후회가 언제나 밀려온다. 더 참고, 더 들어주고,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는 후회다. 그 이후 학생 지도나 학급 운영에 대한 책과 영상들을 많이 찾아봤고, 그래서 그때보다는 조금 나아진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 당시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사뭇 두렵기도 하지만 오늘 연락 온 제자의 메시지로 몇 명에게라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한없이 작아졌던 그때, 내가 더 지혜롭게 대처했어야 했던 사건들. 그럼에도 무사히 한 해를 보냈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졸업식 공연의 역사를 훌륭히 이뤄내기도 했던 아이들. 에버랜드에서 왜 이렇게 일찍 돌아오느냐며 가기 전, 후로 한 달 이상을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정작 현장학습 날에는 환한 미소만 보여주었던 아이들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건강히 자기 몫을 다 하며 지내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진로체험의 날에 모둠별로 준비했던 체험 부스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아이들의 멋진 모습, 연극 대본을 쓰고 발표하던 아이들, 학급 아이들 모두가 참여했던 영화, 학급 발표회 날 저마다의 재능을 뽐내었던 아이들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해 제자 중 한 명의 동생이 올해 우리 반이 되어 생각이 더 많이 나는지도 모른다. 하긴 그 한 해 전 4학년이었던 아이들도 많이 생각난다. 피구를 유난히도 좋아해 20분 쉬는 시간마다 와글와글 나가 매일 피구를 했던 아이들. 지금은 그 아이들은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 아주 오래전 반 아이들 사진을 보면 당시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얼마 전에는 십몇 년 전에 가르쳤던 6학년 아이가 연극배우가 된 걸 유튜브로 우연히 보고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걸어온 세월보다 걸어갈 세월이 적다는 생각에 한 해 한 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를 철들게 했던 재작년 아이들, 좋은 기억만 남기고, 나쁜 기억은 다 잊기를. 그리고 건강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꾼들로 자라길 기도한다. 오늘 연락 온 제자의 말처럼 남은 후배들과 한 해를 멋지게 보내어 아이들의 자랑스러운 모교로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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