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2
사려니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횡단보도 초록불 기다리는 동안 버스 한 대가 가버렸다. 금세 오겠지 했는데 도통 소식이 없어 초조해졌다. 한참을 포기하고 기다리는데 버스 한 대가 왔다.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인터넷에 버스 온다는 표시도 없던 버스가 그냥 오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바로 용두암에 갈까 하고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 중간에 동광양에서 내렸다. 시청까지 걷는 길 뙤약볕이 따가웠다. 둘러보아도 마음이 동하는 음식점이 없어 다시 버스를 타고 용두암 방향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내려서 너무 많이 걸어야 하는 버스를 타는 바람에 바다를 끼고 엄청 걸었다. 허기지고 지쳐서 그런지 바다의 아름다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걸으니 목도 말라 싸 갔던 물을 거의 마셨다.
몇 년 전 맛있게 먹었던 짭조름한 해물 볶음밥이 먹고 싶어 들렀던 바다가 보이는 음식점은 이름은 그대로인데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 주인이 바뀐 모양이다. 밥을 먹어야 해서 그냥 나왔다. 한참을 걷고 또 걷다가 바닷가 횟집이 늘어선 곳 중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 곳에 들어가 전복 해물 뚝배기를 시켰다. 시원한 곳에서 허기를 면하니 허기진 배로 오래 걸었던 보상을 받는 듯했다. 멸치볶음이 너무나 맛이 좋았다. 걷던 중간에 보낸 메일에 며칠간 연락이 없던 편집자님의 전화를 받아 더 행복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쓴 글을 조금만 더 투명하게 볼 수 있게 자세히 써 보라고 하셨다. 지금은 너무 뿌옇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방전되어 가던 폰 배터리를 어느 정도 충전하고 나와 바로 옆 선물 가게로 갔다. 예전에 없던 대형 기념품 가게가 두 개나 생겼다. 한 곳은 사람이 적었고, 다른 한 곳은 북적였다. 예쁜 건 많았는데 가격이 비싸서 많이 사지는 못했고, 두 번째 간 곳에서 머리끈과 귤 모양 은 귀걸이, 그리고 과즐을 사서 나왔다. 예전에는 없었던 대형 카페들이 생겨 그중 하나에 들어가 오래오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커피를 마시니 단 게 먹고 싶어 과즐을 하나 꺼내 먹었는데 바삭하고 달달하고 고소해서 오래오래 바다를 보며 책을 읽고 나와 공항 가기 전에 다시 기념품 가게에 들러 과즐을 한 박스 택배로 집에 보냈다. 명절 때 가져가면 좋을 것 같았다. 남편이 부탁한 오메기떡도 맛이 어떨지 몰라 조금만 샀다.
처음부터 택시를 불렀어야 했는데 버스가 하나 다니기에 계속 기다렸다. 종점에 도착하면 되돌아 나올 줄 알고 15분 넘게 기다렸는데 거기서 멈추고 다시 출발을 하지 않아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갔다. 새벽에 출발할 때 공항의 풍경과 사뭇 다르게 모두 지친 표정들이었다. 내가 지쳐서 그래 보였는지 모르겠다. 비행기 안에서 무릎이 좀 아프다 싶었는데 내릴 때 걷기가 불편할 정도로 무릎이 아팠다. 계속 걷다가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어서 그랬나 보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정말 많이도 걸었다.
어기적거리며 공항을 빠져나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왜 사서 고생하나 싶기도 했지만 사려니 숲에서 자연을 만끽하고 용두암 옆 비행기가 연신 내려오는 하늘과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제주에 다시 가고 싶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가족들이 과즐과 오메기떡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피로가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