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지인과 주말 등산을 시작했다. 계단 오르기를 열심히 하더니 용기를 내어 산에 다니는 동료를 찾아 함께 다녀오곤 한다. 원래 산에만 가면 다리에 쥐가 나 시도하지 않았었는데 건강에 관심이 생겼는지 매주 다녀오려고 계획을 세웠다.
명절 끝에 얼마 전 지인과 다녀왔다는 계양산에 가자고 했다. 이번에는 같이 갈 사람을 못 구한 것인지, 나와 함께 꼭 가고 싶은 것인지 모르지만 계속 거절하기가 미안해 같이 가기로 했다. 사실 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산에만 가면 무릎이 아파 되도록 평지만 걷는다. 오를 때는 괜찮은데 내려올 때 무릎에 충격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면 무릎이 아릴 정도로 아파 절뚝거리기까지 한다. 이번에도 계단이 많다고 해서 걱정되었는데 날씨가 시원해서인지 별로 숨차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나무 그늘이 많지 않아 제주 오름 같았지만 정상에 가까울수록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좋았다.
휴일이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등반을 했다. 시작부터 돌계단이어서 쉬운 길은 아니겠다 싶었는데 가파른 곳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올랐다. 비 예보가 있어 조금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그리 거센 비가 아니어서 맞을만했다. 언젠가 산에서 코피를 많이 쏟았다던 남편은 등산용 배낭에 거대한 물티슈와 두루마리 휴지를 넣고, 지팡이도 두 개나 묶어 달고, 무릎 보호대까지 준비한 채 등산화를 신고 출발했다. 나는 핸드백을 메고 운동화를 신었다. 가다 보니 젊은 커플들이 많았고, 아이들부터 5-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머리가 하얗고 날렵한 노인 분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정상까지 가뿐히 오르셨다. 해발 고도가 300미터 대라 높지 않은 산이고 입구부터 정상까지 1.6Km밖에 안되어 왕복 한 시간 반이면 다녀올 수 있지만 계단이 많아 그리 쉽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코스였다.
쉬엄쉬엄 천천히 정상에 도달했고, 정상에서도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한참 쉬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 방수 바람막이 잠바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하산을 시작했다. 무릎에 충격이 갈까 봐 발가락에 힘을 주고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갔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조금 뻐근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힘들지 않게 내려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빗속에 한 남자 분이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등산 장비를 모두 갖춘 남편의 뒷모습과 겹치면서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 다녀오고 보니 동네 야산 같은 느낌이었는데 너무 호들갑 떤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정상에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았던 산행이었다. 하산하고 먹은 취나물 부침개와 국수 맛이 좋았다. 아이들을 위해 포장해 간 김치찌개도 별미였다. 졸업 연주 끝낸 후 늦가을에 다시 함께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