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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Nov 18. 2022

별별 생각이

졸업연주회를 마치고

  목요일 졸업연주회를 했다. 기독음대에 대학원 리사이틀에 이번이 세 번째 졸업연주회다. 가족도 부르지 않고 형식적 의례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집에 있던 검정 드레스를 입고 화장은 내가 대충 하고 머리도 전날 미용실에서 드라이한 후 아침에 묶기만 하고 가려하던 차에 연주자 단톡에 초대되어 다들 드레스와 헤어 메이크업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할 생각이 없었는데 개인 톡으로 함께 하자는 연락을 받고는 흔들렸다. 수업을 하고 연습을 못한 채 가서 연습하기도 바쁠 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불안했지만 그냥 하기로 핬다.


  수요일 저녁만 해도 그런대로 연주가 막히지 않아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머리와 메이크업을 받을 게 기대되기까지 했다. 오후에 전담 선생님 수업을 바꿔 넣고 점심시간에 출발해 1시쯤 도착했다. 함께 가신 분과 머리와 화장을 할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는데 한 분이 다 오시는 비람에 그분의 헤어가 너무 길어지자 조바심이 일었다. 연습실 대여까지 했는데 늦을 판이었다. 그분은 드레스 가봉까지 하고 차로 같이 이동하자고 하시는데 그러다가는 리허설 직전에나 도착할 것 같아 죄송하지만 드레스 메이크업 샵 맞은편 드레스 가게 앞에 내려드리고 먼저 공연할 곳으로 갔다. 너무 죄송해서 카톡 송금으로 택시비를 보내드렸다. 그럴 줄 알았으면 먼저 갈 걸 그랬다.


  한 번 하고 나니 반주자님이 오셨다. 손이 안 풀린 채 엄청 틀려 가며 해 봤다. 부분 연습을 좀 하고 한 번 더 맞춘 뒤 리허설을 하러 갔다. 잘 되던 곳도 안 되고 사진 촬영을 연신 하니 집중도 안 되었는데 급기야 앞부분만 하고 시간이 다 되어 내려왔다. 조금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연습했다. 손이 조금씩 풀렸다. 괜히 2부로 넣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남아버렸다.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고 중간에 안 틀리던 부분을 틀려 가며 연습했다. 반주자님이 오래 기다려 죄송한 마음이었다. 마지막 맞추었을 때는 이대로만 하자는 말을 할 정도로 꽤나 괜찮았는데 무대에 오르니 갑자기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앞부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유일한 바이올린이라는 관객의 말이 들릴 정도로 가까웠다. 첫 빠른 구간에서 예쁘지 않게 되면서 시작된 것 같다. 잡념이. f홀을 관객석쪽으로 행하게 섰어야 했는데 비뚜르게 서 있음을 알았다 중간에 방향을 틀었지만 별별 생각이 머릿속에서 일어 실수들이 이미 여러 번 있었다. 잘 안되던 부분이 잘 넘어가고 한 번도 틀린 적 없던 곳에서 어이없이 틀렸다. 최대한 티 안 나게 넘어가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부분은 깔끔하게 잘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오니 아쉬움이 많긴 했지만 마지막이 괜찮았고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에 다시 기분이 좋아져 반주자님을 한남동까지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왔다. 머리에 핀이 몇 개인지. 초강력 스프레이로 플라스틱처럼 굳은 머리를 비누로 박박 문질러 가며 감고 나오니 개운하긴 하다. 앞으로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되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던 졸업연주 후 어떤 것을 얻었나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소중한 반주자를 만났고 꿈의 곡을 사람들 앞에서 연주했다는 것 정도. 다음 주  토요일에 같은 곡으로 다른 무대에 선다. 이번과 같은 실수가 반복되어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한 번 해 봤으니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아울러 생긴다. 조금은 쉬고 다시 천천히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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