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 김시습 기념관,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그리고 커피콩빵
편안한 잠을 자고 둘째 날 조식을 먹고 선교장으로 향했다. 날씨 좋은 날 산책 코스로도 좋다는 선교장부터 허난설헌 기념관을 거처 경포 해변까지 연결되는 길을 차로 다녔다. 봄 날씨처럼 따스한 햇살이 반가웠다.
선교장은 태조 이방원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 10대손인 이주화가 두 부인 사별 후 강릉 사람 안동 권 씨 부인을 맞았다. 남편 사망 후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온 권 씨 부인은 시댁 충주에서 소금 유통하는 것을 보고 아들과 함께 전주봉 아래 석호에 염전을 개발하였다. 아들 이내번은 소금을 조선 후기 전국 15대 장시 중 하나인 평창 대화장에 내다 팔아 농지를 늘려 가던 중 집터를 사서 선교장을 짓고 이사했다. 일제 강점기 그의 후손인 이근우는 동진학교를 설립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일제에 협력하는 척하면서 동진학교 교사였던 이시영과 여운형을 통해 김구 주석에게 독립자금을 보내기도 했다. (골목길 역사산책 강릉 조선길 산책 선교장 부분 요약) 연못 위에 지어진 활래정이라는 건축물이 정말 멋있었다.
선교장 구경을 마치고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가기 전 김시습 기념관에 들렀다. 자그마한 공간이었고 무료였다. 지역의 역사를 소중히 간직해 나가는 강릉시의 노력이 엿보였다. 금오신화를 쓴 15세기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그는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후 중이 되어 떠돌았다고 한다. 그의 자유로운 글씨와 시를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으로 갔다. 이들의 아버지인 허엽의 호가 초당이다. 초당 마을은 625 때 아픔이 있었다고 한다. 좌익 소굴로 지목된 초당마을은 우익 청년들과 싸우게 된다. 많은 이가 월북하고 남은 주민은 생계를 위해 순두부를 내다 팔았는데 바닷물을 간수로 썼다고 한다. (골목길 역사산책 요약) 김시습 기념관에는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는데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그마한 전시관과 생가 터, 그리고 나무숲이 있었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 지나가다 맛있을 것 같아 검색해 들른 자스민 레스토랑에 갔다. 대기가 40분이나 되었는데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아 기다리기로 했다. 가격 대비 맛이 좋다는 평이 많아 궁금했다. 인내심이 부족해 대기 있는 식당에서 기다려 본 적이 별로 없는 우리는 주리를 틀며 기다렸다. 30분 정도 만에 들어가 피자와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함께 나온 샐러드와 옥수수죽도 맛있고, 스테이크 숙주 올린 돈가스 그리고 페스트리 피자도 독특한데 양도 많고 맛이 정말 좋았다. 남은 피자는 포장해 주셨다.
바로 카페 거리가 있다는 안목항으로 갔다. 차가 너무 많아 주차할 곳이 없어 차로 쭉 한 바퀴 돌아보았다. 카페가 정말 많아 어디로 갈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커피콩빵을 살 생각에 조금 멀리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해변을 걸어 강릉 커피콩빵 카페에 들어갔다. 10개짜리를 사서 디카페인 커피랑 함께 먹어 보았는데 좀 달긴 하지만 맛이 괜찮아 나오면서 더 샀다. 카페에 앉아 있다가 남편 동료의 전화를 받고 추천받은 횟집에서 물회를 먹고 집에 가기로 했다. 해변을 따라 사천항으로 가서 등대 가까이까지 걸으며 바다 구경을 하고 물회와 우럭미역국을 먹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너무 맛이 좋아 그릇을 다 비웠다.
지구촌 멀리에서는 지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좋은 것 보고 맛있는 것들을 먹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모금 운동에 동참하기로 했다. 강릉을 제대로 본 게 처음인데 너무 매력적인 도시라 앞으로도 가고 싶어질 것 같다. 위치마다 모습이 조금씩 다른 바다와 역사가 숨 쉬는 그곳에 조만간 다시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