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포옹>> 닮은 부부 - 박연준

by Kelly

한동안 푹 빠져서 지냈던 시인 장석주 님의 부인으로 이분을 알게 되었다. 글에서 외로움이 뚝뚝 묻어나던 시인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까다로울 것 같기도 하고 존경스러울 것 같기도 한 시인을 남편으로 맞은 분이 누구일지 궁금한 마음에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책 속에는 서로 많이 다른 것처럼 나오지만 타인인 내가 봤을 때는 둘이 상당히 많이 닮아 있다.


책을 너무나도 좋아해 이사와 보관 비용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하는 부부는 그럼에도 책을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증식하는 책들을 집주인으로 삼고 공생하는 삶을 택했다. 책에 또 하나의 집주인인 ‘당주’라는 고양이와 이후에 하나 더 들인 ‘헤세’를 키우며 오붓하게 살아간다.


정리정돈에는 부부가 관심이 없어서 늘어놓은 옷가지도, 펼쳐 읽던 책도 인테리어인 것처럼 방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누구 하나 정리에 골몰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 명은 잔소리하고 치우느라, 다른 한 명은 잔소리 듣느라 힘들었을 텐데 둘은 그런 것에 별로 큰 관심이 없어 한편 다행이다.


작가는 남보다 크게 불우하지도, 크게 다복하지도 않은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작은 고통들이 글을 쓰는 동력이 되었다. 약간의 우울감과 작은 결핍이 그의 글을 오히려 윤택하게 한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예술의 의미를 발견하는 저자는 삶 자체가 예술임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시라는 것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



--- 본문 ---


- 책을 마무리하는 일은 꽃밭에 물을 주듯 기르던 단어 곁을, 그 장소를 떠나는 일이다. (8쪽)


- 내 인생의 단 한 권의 산문집으로 남을 줄 알았던 책은 앞으로 쓰게 될 책들의 물꼬를 열어주었다. 무명에 가까운 시인이 쓴 글을 읽고, 독자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입소문을 내주었다. 사람들이 ‘마치 내 이야기를 쓴 것 같았다’라고 소감을 말해올 땐 놀랐다. 동일한 경험이 아니어도 솔직하게 쓴 내밀한 이야기는 보편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42-43쪽)


- 마음이 마음을 안다. 내 자신감 없음을 저쪽에서 알게 되면 같이 불안해진다. (50쪽)


- 예술은 소수의 개념이 아니라 존재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누가 작품을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모나리자>를 소유했다고 볼 순 없다. 그림은 화가의 것이 아니다. 시가 시인의 것이 아니듯이. 예술은 곳곳에 넘쳐난다. 공중화장실 문짝에도, 이발소 벽에도, 내 방에도, 박물관에도, 전시회장에도, 지하철에도, 백화점에도, 누군가의 다이어리나 책 표지에도 예술은 있다. (55쪽)


-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연’이다. 자기 본성에 맞는 삶을 살도록 태어나 자라는 예기다. (60-61쪽)


- 살면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 한다. 창작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잘하고 못할 수가 없다. 딱 자기만큼 (정확히는 자기 안목과 성실함만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연연해야 할 건 나, 내 삶, 내 생각이다. 너, 네 삶, 네 생각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문제다. (68쪽)


- 어느 하루는 나태함이란 가운을 입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느끼며 휘청휘청 걷고 싶다. 뜬구름처럼, 완벽한 하루일 게 틀림없다. (71쪽)


- 겨울을 살아낸 나무들은 ‘봄의 명랑’을 옷으로 입고 외출한다. 이동이 아니라 율동을 추구한느 외출이다.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기, 흔들리기, 피었다 지기, 나무의 율동인 리듬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꽃을 피우고 입을 뾰족이 일으키는 나무의 힘엔 리듬이 있다. 딱딱한 껍질을 뚫고 솟아나는 작고 부드러운 것들이 연주하는 음악이여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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