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 왔다. 태어나 처음 오는 곳이다.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 덕분이다. 오래전 책을 읽고 블로그 이웃인 분의 유튜브(이승희의 영감노트)를 보다가 이곳에서 묵은 영상을 본 것이다. 내가 꿈꾸던 바로 그런 장소였다. 바다가 보이는 멋진 숙소이자 사무실이었다. 자전거 대여도 가능했다. 원래 가격이 무척 비싼 곳인데 여성 전용 도미토리는 1박에 7만 원이어서 바로 예약을 했다. 8월 한 달 내내 하루가 비어 있어 그날만이라도 예약을 했는데 다음날 딸이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다른 방을 알아보다가 둘이 같이 묵으면 거의 50만 원인 걸 알고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혼자 가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알아보던 중 내가 예약한 바로 다음날 하루가 갑자기 비어있다는 걸 발견하고 이틀 연달아 묵을 수 있게 되었다. 딸과는 다른 곳에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이번에는 조용히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전날 가족들이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 두고 일찍 잠들었다. 요즘 5시 반에 눈을 뜨는데 바로 챙겨서 나오려고 했으나 챙길 게 생각보다 많아 7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저번에 확인했던 시간보다 훨씬 적게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중간에 기름도 넣고 휴게소에도 들렀으나 10시 반쯤 맹그로브에 도착했다. 체크인은 3시였지만 미리 로비를 이용할 수 있다고 들었으나 점심을 먹어야 해서 차로 동네를 둘러보았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자그마한 식당과 카페가 있는 것이 좋았다. 바다는 잔잔했고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 바다 구경은 저녁에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차를 숙소에 대고 식당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로비 바로 앞에 짐을 넣을 수 있는 라커가 있어 바이올린과 화장품류를 넣어두었다. 방음시설이 된 곳이 있다고 해 저렴한 악기를 가져왔는데 와서 보니 악기 연습은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로비 책장에 승희님의 책이 꽂혀 있었다. 머무는 동안 읽어보고 싶다.
조금 걸으니 식당이 줄지어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 초당순두부를 허겁지겁 먹고 그 앞에 있는 카페에서 크림 라테를 맛있게 먹으며 인쇄해 온 원고를 읽으며 수정할 부분들을 찾았다. 금방 다 읽고 수정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2장(총 4장) 중반까지만 읽고 나왔다. 2시쯤 숙소에 도착하여 로비에서 마저 읽었다. 처음에는 롤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어 몰랐는데 조금 걷어 올리니 눈앞에 풀과 모래사장, 그리고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분들도 함성을 질렀다. 행복한 기분으로 3장 정도까지 읽다가 3시가 되어 문자로 온 방을 찾아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넷이 함께 쓰는 방에 샤워부스가 딸린 화장실이 있었고, 바로 앞에 바다가 보여 쾌적했다. 누군가가 잠을 자고 있어 조용히 나와 다시 로비에 앉았다. 4장까지 다 읽으며 고치고 파일을 수정하고 나니 6시가 넘었다. 점심과 커피를 거하게 먹었는지 배가 고프지 않아 조금 더 기다렸다가 나갈까 한다.
원래 올 때 관광지도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이곳이 너무 좋아서 나가기가 싫어진다. 저녁을 먹고 바닷가는 걸을 것이다. 요즘 유행이라는 맨발 걷기도 해볼까 한다. 마음 같아선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싶지만 혼자라 그건 번거로울 것 같아 발만 담그려고 한다. 아침에 요가도 한다는데 요가를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고 자유시간이 좋아 신청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는 일찍 로비에 내려와 바다가 바로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 책을 잔뜩 싸 왔는데 과연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새로운 책도 쓸 생각인데 아직은 별 생각이 안 난다. 시작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오후에는 가까운 곳이라도 잠깐 다녀와야겠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를 발견해서 너무 행복하다. 여름과 겨울, 매번 이곳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