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재난 영화들은 재난이 일어나기 전 행복했던 상황을 먼저 보여주고 다음에 갑자기 닥치는 천재지변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조금 달랐다. 일단 엄청난 상황이 일어난 후의 이야기들을 중간에 그전 이야기를 잠깐씩 보여준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지구의 환경 변화로 엄청난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아름답고 찬란하던 서울은 한순간에 쑥대밭으로 변한다. 비싼 아파트에 둘러싸여 설움을 겪던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이 선택받은 것을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 시체와 콘크리트 잔해가 널린 그곳에서 혼자 우뚝 선채 남은 것이다.
처음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찾아온 외부인을 거하게 했지만 먹을 것이 점점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자선을 계속 베풀기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지도자를 세우는 것은 최우선 순위인 법. 사람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불구덩이로 뛰어든 영탁이 주민 대표가 되어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황궁아파트의 평화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이다.
예고편을 애써 보지 않았던 나는 주인공으로 이병헌 님이 나온다는 것 외에 모른 채 영화관에 갔기 때문에 낯익은 배우들을 볼 때마다 반가웠다. 추운 겨울 엄청난 재난을 만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이럴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나온다. 악인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로부터 다 함께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까지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보며 숙연해졌다.
재미로 볼 오락 영화는 아닌 듯하다.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충격적인 장면들도 많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같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있을까? 결국 살아남는 사람은 남을 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고귀한 인류애를 담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