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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Jan 14. 2022

똑! 똑! 주간보호센터

치매도 육아처럼 19

 원, 투, 트리, 홉!

 원, 투, 트리, 홉!

 어머니의 노인요양등급 인증서를 받으러 가는 발걸음은 흡사 중학교 때 무용시간에 배웠던 호핑 스텝과도 같았다. 가볍고도 경쾌하게, 홉! 홉! 호핑 스텝~~

 치매가 점점 악화되자 어떻게 돌볼지 막연하게 걱정만 늘어가고 있었는데 이제 국가차원의 보호망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든든하고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담당 공무원이 제법 두툼한 파일에 증서와 자료를 담아 건네며 수급자로서 지원받을 수 있는 노인 돌봄 서비스에 대해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건 주간보호센터에 관한 정보였는데 관내 주간보호센터 리스트가 깨알 같은 글씨로 잔뜩 수록된 안내책자뿐 아니라 리스트업 된 인쇄물까지 따로 챙겨주었다.

 이렇게 많으니 골라서 보내 드릴 수 있겠다 싶어 파일을 소중히 품에 안고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리스트를 펴놓고 비교적 근거리에 있는 센터를 찾아 형광펜을 긋기 시작했다. 국공립센터는 조금 거리가 멀어도 밑줄 쫙~~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때처럼 국공립이나 규모가 큰 사설 주간보호센터를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전화를 걸어보니 국공립센터는 대기자만 수십 명이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립센터도 정원이 차서 당분간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인구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 나니 과연 어머니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센터를 찾을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다. 그때까지도 어머니는 노인들이 모여있는 곳엔 눈길조차 주지 않을 때라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조급해졌다.

 소규모라도 좋은 곳을 알아보자 싶어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몇 군데 추리고 전화를 걸어보았다.

 당장 입소가 가능한 곳 두 군데와 방문 약속을 하고 가보았는데 그중에 새로 생긴 센터가 좋아 보였다. 신축건물이라 세련된 인테리어와 통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이 환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는데 아직 알려지지 않아 입소 어르신이 너무 적고 어떤 곳인지 정보도 별로 없는 곳이라 망설여졌다. 그래서 좀 더 알아보고 결정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다른 센터를 방문했다. 그곳은 운영한 지 꽤 오래되어 이용하는 어르신도 많이 계시고 이용자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건물이 낡아 보였다. 창문 틈으로 대로변의 자동차 소음이 그대로 들어오고 방문했을 때가 마침 점심 휴식시간이었는데 트로트 음악이 크게 울려 퍼지고 있어서 좀.. 어수선한 경로당 분위기였다.ㅜㅜ  

 선생님들은 어디든 친절하고 활기 있어 보였고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대동소이했다.

 오전에 간단한 스트레칭과 인지활동, 점심식사, 자율 휴식, 레크리에이션, 간식타임, 공작활동... 그리고 월별로 생신잔치나 이미용 서비스 같은 특별행사들을 한다.  

 어머니가 어디를 더 좋아하실지 우선순위에 놓고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새로 생긴 센터로 결정했다. 다소 모험 같은 느낌은 있었지만  홀몸어르신 복지사업이나 재가복지사업을 아우르는 사회적 기업이어서 좋게 생각되었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며 자신 있게 말씀하시는데 믿음이 생겼다.

 이 모든 과정을 당사자인 어머니는 쏙 빼고 진행하는 것이 맘에 걸렸지만 부디 잘 적응해서 즐겁게 다니시기를 소망하며 입소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다음 날, 어머니에게 재미난 프로그램이 많은 문화센터가 있는데 한 번 가보시지 않겠냐고 말씀드리니 예상했던 대로

 "나는 심심한 걸 모르는데? 혼자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혼자 얼마나 잘 지내는데, 그런 데 안 가도 돼!"라고 단호히 대답하셨다.  드라마조차 내용을 이어서 이해하고 즐길 수 없는 인지상태라 독서나 그림 그리기는 하지 못한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말이다. 

 "맞아요, 어머니는 혼자 참 잘 지내시죠! 그런데 제가 출근하고 나면 혼자 계시는 게 좀 걸려요. 문화센터에 한번 가보시고 생각해보실래요? 좋은 친구도 새로 사귀시고요."

 "음... 그럴까? 그럼 한 번 가보지 뭐. 아니다 싶으면 안 가면 그만이니까. 호호호."

 생각보다 출발은 순조로웠고 이 기회를 놓칠세라 당장 외출 준비를 하고 센터로 향했다.

 차를 타고 10분 이내의 거리라 '그래서, 지금 어디 간다고?'라는 물음에 같은 대답을 몇 번 하지 않고도 금방 도착했다.ㅎㅎㅎ

 새로 꾸민 인테리어가 어머니 맘에 드는 눈치였고, 젊고 상냥한 복지사와 요양보호 선생님들이 반갑게 맞이해주니 어머니도 모처럼 활기 있는 분위기에 매료되는 듯했다.

 그렇게 어머니에게 첫선을 보이고 다음 날부터 요양보호 선생님이 차로 모시러 오기로 했다.

 

 D-day.

 am.08:30

 출근하면서 어머니와 통화. 아침식사 마쳤다 하여 외출옷으로 갈아입고 계시다가 센터에서 전화가 오면 1층으로 내려가시라고 당부드림. 어머니 흔쾌히 그러마 대답.


 am.09:30

 마중 오신 요양보호 선생님께 전화가 옴.

 "저 보호자님, 어르신이 오늘 몸이 안 좋으시다고 안 가시겠다고 하는데 어쩌죠?"

 "네?ㅜㅜ 죄송해요, 선생님. 잠깐만 기다려주실 수 있어요? 제가 어머니와 통화해 볼게요."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더니

 "어머니, 센터에 가시기로 약속했잖아요~ 선생님이 일부러 오셔서 기다리는데 어쩌죠?"

 "내가 이렇게 몸이 안 좋은 데 가긴 어딜 가니? 내 이렇게 아프긴 첨~~ 이다!"

 "......."

 아 놔~~ 한 시간 만에 중병환자 같은 목소리라니! 이렇게 단순변심을 위장하기 있기, 없기!!

 나야말로 수없이 겪으면서도 매번 첨~~ 같이 막막하고 속상한 기분이 자동으로 리셋된다.

 어머니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엔 진심 아프다고 느끼는 거라는 것을 내 머릿속에서 캐내 가슴으로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때라  어머니의 반응을 당장 거짓으로 규정한 나는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냥 부르르 떨다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까 전화드릴 땐 괜찮으신 것 같더니.. 할 수 없죠 뭐."

라고 까칠 불손한 멘트를 날림.

 그리고 아무 성과 없이 요양보호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선생님,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죄송합니다! ㅜㅜ"

"아니에요, 처음엔 다 그러셔요! 조금 있다가 다시 모시러 올게요."

"정말요? 그래 주실 수 있어요? 고맙습니다!"

"곧 적응하실 테니 걱정 마세요."

어머니에게 1시간은 각종 산만한 일을 하다 지쳐 쓰러지기에 충분한 시간... 

 am10:30

  다시 요양보호 선생님께 전화가 .

"보호자님, 어르신 모시고 센터에 갑니다. 댁에 갔더니 문도 열어주시고 같이 가신다고 하네요."

"우와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pm17:30

 요양사님으로부터 곧 아파트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고 어머니를 맞이함.

어머니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요양보호 선생님에게

"내일 또 봐!"라고 인사하시곤 나를 향해

"아니 어떻게 알고 왔어? 저이들이 나를 이렇게 태워다 준다? 고맙게도~"

"센터는 어떠셨어요? 재미있었어요?"

"응, 다닐 만 해! 다들 내가 뭘 했다 하면 와서 보고는 야단들이지 뭐니? 호호호"

"오~~ 역시! 우리 어머니!"


 이만하면 대성공! 흥행 대박 예감!^^

 그렇게 안도와 기대감에 들떠 뒤이어 닥쳐올 위기는 감지하지 못한 채 어머니 손을 잡고 원, 투, 트리, 호핑스텝을 밟았다.


치매도 육아처럼 19  주간보호센터를 고를 때 미리 알아보아야 할 것이 있다.

*노인 돌봄에 대한 이해와 훈련이 되어있는 전문인력(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이 상주하는지

*송영서비스(센터에 모시고 가고 오는 서비스를 말함)가 가능한지

*식단을 공개하고 계획에 따라 제공하는지 

*휴식공간이 충분한지(종일 앉아 있기 힘든 경우 잠깐식 눕거나 편히 기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근처에 병원이 있는지(일하는 보호자의 경우 낮시간에 병원 진료를 부탁드릴 수 있다)

*화장실이나 프로그램실 동선이 편리하게 되어 있는지, 출입구가 눈에 띄는 곳에 있는지, 잠금장치가 잘되어 있는지

*시설 정원이 몇 명인지, 현재 이용자 수는 몇 명인지 (너무 밀집되는 환경은 후순위로)

*SMS 서비스를 통해 매일의 활동을 사진으로 볼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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