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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Feb 12. 2022

센터 적응을 위한 필살기, 감언이설

치매도 육아처럼 20

 '주간보호센터'보다 '데이케어센터'가 좀 더 명랑하고 산뜻하게 느껴지는 까닭일까? 대부분의 주간보호센터의 간판에는 데이케어센터라고 적혀 있다. 

 어머니에겐 문화센터의 이미지로 각인시키려 그냥 '센터'라고 부르며 매일 그곳을 즐겨 찾으시도록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강구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지나간 바람은 춥지 않다'

 미리 조금만 당겨서 쓰고 싶은 이 시간의 마법은 그토록 내 심사를 헤집어 놓던 일조차 이미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 버린 지 오래다. 

 그렇다 해도 그때가 고달팠다는 것은 팩트!

 때는 바야흐로 2017년 여름.

 어머니를 센터에 등록시키고  3개월 정도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이며 센터에 적응하(시키)는 시간을 보냈다. 3개월 후에는 100퍼센트 적응한다는 것을 확신했다면 좀 수월했을까?

 선생님들은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처음엔 가기 싫다고 하시다가도 한 두 달만 지나면 즐겁게 다니신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다는 바람만 있었지 믿음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는 다른걸요?'


 내가 누구보다 어머니를 제일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이 전문가의 조언조차 철통 방어했다.

 물론 어머니의 행동이 그 착각을 더욱 강화시키기에 충분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일단 센터에 가면 시종일관 즐겁게 지내실 뿐만 아니라 철석같이 내일도 가마 약속해놓고는 아침이 되면 배반의 장미로 피어나

 '밤새 너무 아파서 한 숨도 못 잤다고!'

 '난 그런 데 안가! 혼자서 지내는 편이 훨씬 좋아.'

 '내가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왜 이래라저래라 하니?'

 '아니 글쎄 내가 어딜 간다고 했다고 그래?'

 '센터라니? 뭐하는 데야, 도대체?'

      ...

 끝도 없는 이유를 붙이며 억지와 생떼로 기껏 마중 오신 요양보호 선생님의 걸음을 허사로 만들기 일쑤였으니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침마다 폐를 끼치게 되니 너무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사실 어머니가 긴긴 하루를 지루하고 우울하게 보내게 되거나 혹 내가 없는 사이 위험에 처하게 것이 걱정스러운 것보다 선생님들께 면목없어지는 것이 더 싫었던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내 잘못도 아닌 일에 내가 죄송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이런 느낌... 이거 이거 우리 아이들 키울 때랑 똑같지 않나!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때, 가기 싫다고 하거나 늑장을 부려 등원 차 시간에 맞추지 못하면 아이들을 다그치고 윽박지르던 얼굴 표정을 채 수습할 새도 없이 어린이집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쩔쩔매며 인사를 하곤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원망이 가득 담긴 아이들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언짢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가뜩이나 전업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겐 무자비한 엄마가 되었고 선생님에겐 민폐맘이 되었으니 만족은커녕 심지어 실패한 인생이 아닌가 싶어 더욱 비참해졌다. 그렇다고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아서 억울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 아이들이나 남편, 나 자신에게조차 원망의 마음을 품고 지냈다. 그러니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교, 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지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내 잘못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생각할수록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고 어느덧 돌이키기 어렵게 되어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배움의 길을 찾아 나섰는데 한 발짝 내디디기 무섭게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나쁜 언행들이 주렁주렁 넝마처럼 펄럭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 없이 내뱉기 바빠서 미처 살피지 못했던 아이들의 슬픈 표정이 그제야 또렷이 보였다.

 

 모두 내 잘못이 맞았다.

 아이들의 발달과정이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난 엄마로서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안다고 과신하며 내 방식을 고집한 탓이었다.

 지금도 가끔 내가 퍼붓는 융단폭격에 초토화되던 아이들의 얼굴이 생각날 때면 가슴 저 아래가 저려온다.  이젠 두 아이 모두  나보다 훌쩍 커서 듬직하게 내 보호자를 자처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하마터면 다음 무대의 주인공은 어머니가 될 뻔 했다 ㅜㅜ

 


 다행히 어머니를 키울(어머니, 쏘리!^^) 때엔 제법 배움이 무르익었던지라 배운 대로 실천에 옮기며 어수선한 마음을 추슬렀다.


1. 어머니의 마음을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자.

2. 센터 요양보호 선생님께 수고를 끼치긴 했지만 소임을 다하고 있는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 이상의 지나친 감정은 경계하자.

3. 어머니가 즐겁게 센터에 갈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 찾기에 집중하자.


 이렇게 정리만 해도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한끝에 한 번 두 번 성공사례가 쌓이면서 백해무익한 스트레스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짧은 시간에 되진 않았지만 그 과정이 악화일로가 아님이 분명하니 기꺼이 기다릴 만했고 나만의 필살기 '감언이설'을 자꾸자꾸 연마해 나갔다.


"나 오늘 감기 기운이 있어서 어디에도 못가."

"아이코 몸이 안 좋으시군요! 어쩌죠? 오늘 어머니가 뜨개질 강의를 맡았으니 꼭 나오시라고 신신당부하시던데요. 어르신들이 어머니께 배운 대로 수세미를 떠서 집에 가져갔더니 너무 좋아한다고요."

"그래? 그럼 약 먹고라도 가야지 어쩌겠어."

"괜찮으시겠어요? 가셨다가 정 안 되겠으면 제가 모시러 갈게요."

"아냐, 괜찮을 거야."


"아이코 몸이 그렇게 안 좋으시다니 어쩌죠? 오늘 생일파티 행사에서 어머니가 축하편지 낭송을 하기로 했다면서요? 누가 대신할 어르신이 계실까요?"

"아유 참, 있긴 누가 있어? 나 말곤 그런 거 할 사람이 없지! 할 수 없네. 아파도 나가줘야지."


"어머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네요? 오늘 노래대회 있는 날인데 상 받기는 어렵겠는데요? 무슨 선물을 주시는지 몰라도 어머니가 받을 수 있었는데 아쉽네요."

"아니 아침이라 그렇지,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다들 날더러 꾀꼬리라나 뭐라나?"


"그렇게 아파서 어쩌지요?  병원 문을 열 때가 아직 멀었으니... 센터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선생님이랑 다녀오시면 안 될까요? 영양제도 하나 맞으시고요."

"아직 병원 열려면 멀었나? 뭐 영양제까진 필요 없고 약이나 좀 달래지 뭐."


 

 어느덧 무림의 고수가 된 며느리의 감언이설에 힘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어머니는 순순히 센터 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앗싸!^^


 

 

 


치매도 육아처럼 20  밤사이 배회를 하거나 너무 일찍 깨서 활동하다가 막상 아침이 되면 기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센터 생활이 '연속적인 일과'라는 인지가 없으니 갑작스러운 외출로 여겨져서 선뜻 내키지 않을 수도 있고... 이유는 그때그때 다르고 잘 모를 때도 있지만 치매환자가 센터 등원을 거부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능하면 그 원인을 알아보고 적절한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도움이 된다.

어머니의 경우는 남을 가르치거나 돕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어서 그것을 십분 활용했다. 아크릴 털실과 코바늘을 사서 수세미 뜨기를 가르쳐드리라고 했더니 매우 기뻐하셨고 센터에서도 대환영이었다. 일단 센터에 가시기만 하면 배테랑 노인복지 전문가들이 뒤를 맡아주시니 우리는 보내드리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그리고 일과 중 어떤 프로그램에 즐겨 참석하시는지 알면 더욱 치명적인 감언이설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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