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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Apr 02. 2021

치매.. 우리는 말씀드리지 않기로 했다

치매도 육아처럼 4

 치매검사를 해보기로 결정은 했는데 어머니께 뭐라고 말씀드릴지 걱정스러웠다.

 나의 시어머니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6.25 전쟁통에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1등을 놓치지 않은 우등생이었고 젊은 시절엔 맞춤 양복에 하이힐을 신고 명동거리를 활보하시던 멋쟁이 커리어우먼이었으며 결혼 후에는 남편과 자녀들에게 자타공인 현모양처로 사시다 예순이 넘어 처음 배우기 시작한 수채화에 정진, 칠순 기념 개인전을 열만큼 재능도 자존심도 굉장한 분인데 치매검사를 받자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어느 정도 예측이 되어서다.

 마침 아는 분이 신경과 의사로 재직하고 있는 병원에서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고 영양제를 처방받아 복용 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서 어머니 연세에 꼭 필요한 건강검진 프로그램이 있다고 설명드리고 자연스럽게 검사를 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큰 거부감 없이 검사를 받기로 하셨다. 


  MRI 촬영 전 문답 검사실에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갔다.

 “생년월일이 언제인가요?”

 “12월 31일인데? 아 생년.. 은 37년이지? 맞나? 호호호"

 “오늘이 몇 월 며칠인가요?”

 “글쎄 오늘이… 내 정신 좀 봐, 오늘 달력도 안 보고 나왔네"

 “지금은 어느 계절인가요?”

 “봄인가? 가을인가? 호호호 계절 바뀌는 것도 모르고 살아요."

 쉽고 단순한 질문인 것을 알면서도 얼른 대답하지 못하시자 극도로 움츠러들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안절부절 내 쪽으로 자꾸 시선을 주셨다. 따로 남아 보호자 답변을 하고 나오는 내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것저것 캐물으시는 걸로 보아 어느 정도는 치매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MRI 촬영을 마치고 당일에 검사 결과를 들었는지 며칠 후에 들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의사 선생님이 쪼그라들고 있는 뇌 사진과 몇몇 기준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인지 그래프를 보여주시며 알츠하이머, 치매라고 진단해주시던 장면은 또렷이 기억난다. 

 아 어쩌나...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이제부터 뭘 어째야 하지? 치매가 치료 가능한 병이 아니니 나빠질 일만 남았는데... 아이고...

 그나저나 이 사실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라면 알고 싶을 것 같았다.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이 끔찍한 상황을 내가 모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연히 알아야지! 그래서 뭐가 되었든 아직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당연하지! 그렇고 말고!

 하지만 선뜻 말씀드리기가 어려웠다. 당신이 치매인 것을 알고 받을 충격이 얼마나 크실까?

 혹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멀쩡한 사람을 환자 취급한다며 역정만 내시면 어쩌나?

 그래도 당신에게 일어난 이 큰 사건을 알려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선 다른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검사 자체에도 미온적이었던 가족들은 검사 결과를 듣고 충격에 휩싸였고 어머니껜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이 고민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말씀드려봐야 곧 잊어버리기도 하거니와 이미 인지력이 흐려져서 어떤 의미 있는 시간을 꾸려나가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보호자의 마음이 좋은 쪽으로 결정하면 되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의사 선생님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말씀드리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어느새 나는 당사자의 마음을 살피기보다는 보호자로서 수월한 쪽으로 기능적인 선택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발병 사실을 들었을 때에도 어머니 걱정보다 앞으로 내가 짊어질 부양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를 재기 바빴다. 그렇게 나는 치매환자의 보호자가 되었다. 

          .

치매, 알츠하이머, 인지증... 무슨 이름으로 불러도 그저 무겁고 무거웠던 걱정과 근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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