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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인가?

치매도 육아처럼 3

by 박경주

“어쩐 일로 전화를 다했어? 너네는 전화요금 아껴서 부자 되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리다가 주말을 넘기고 월요일에 전화드렸더니 잔뜩 날 선 목소리로 날벼락같은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

‘어제 전화를 드리지 않아 서운하신가? 아니 하루가 아니라 열흘을 전화 안 드렸대도 그렇지, 어쩜 이러실 수가 있지? 나로서는 힘껏 한다고 했는데.. 내가 더 서운하네 뭐..’

이 느닷없는 폭언은 결혼생활 동안 듣고 잊지 않기로 결심한 몇몇 서운한 말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내 맘에 콕 박혀서 시시때때로 고부관계에 생채기를 냈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무개가 내 반지를 훔쳐갔어!”

“아무개가 빌린 돈을 안 갚아!”

“아무개는 내가 베푼 은혜도 모르고 날 찾지도 않아!”

“아무개는 나한테만 식사비를 내게 해!”

세상 모든 의심과 분노, 실망과 서운함은 모조리 어머니 차지였다.

주변 사람에 대한 험담이나 불평, 당신의 신세한탄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만 폭포수처럼 쏟아내기 시작했고

말씀이 길어질수록 노여운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모노드라마 배우처럼 일방적으로, 그리고 매번 같은 극을 되풀이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셨는데 매일매일 끝나지 않을 듯 이어졌다. 이쯤 되니 혹시 치매.. 인가?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한동안 갸웃거리기만 했던 이유는 그 전에도 종종 하시던 말씀이 섞여 있기도 했고 사실이나 정황이 맞아떨어져서 나조차도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이야기가 제법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댁에 가면 이상한 점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어머니가 국간장과 조림간장을 구분하지 않고 엉뚱하게 사용하기도 하고 음식 간을 맞추지 못해 맛이 형편없어졌을 뿐 아니라 요리 종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정리정돈을 누구보다 잘하시던 분이 물건들을 보이는 곳에 늘어놓기 시작했고 장롱이 비어있어도 간이 행거에 옷을 수북이 걸어두셨다. 불과 몇 분 전에 했던 말씀을 새로운 듯 다시 반복하시는데 숫자라든가 요일, 장소 같은 디테일이 자꾸 달라졌다. 또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어떤 화제로 시작하든 결국 화제의 초점을 본인에게로 돌려 기승전 어머니로 끝났고 때때로 나나 아이들에 관해 궁금한 것을 물으실 때조차 내가 물음에 대답을 채 끝내기도 전에 새로운 질문을 하거나 다른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다.

그냥 성격이거니 생각하기엔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이상하다 싶어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치매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하니 ‘원래 그러셨는 걸 뭐. 나이가 드시니 더 그러신 거지.’라며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내가 유난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야, 그래도 이건 좀 다른 것 같아.. 나도 10여 년 어머니를 겪었는걸? 나로서는 너무나 낯선 어머니의 모습인데...

하지만 남편이나 시댁 가족들에게 '2년 전 인지장애 진단을 받았으니 그 사이 얼마든지 치매로 진행되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자리할 곳이 없었다. 어머니 당사자의 검진은커녕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이 첫 번째 난관이 될 줄이야...

나는 이상하게 생각되는 사례들을 계속 이야기하며 건강한 사람도 검진은 필요한 거니까 검사를 한 번 해보자고 설득했고 결국 MRI와 치매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알츠하이머-치매였다.ㅜㅜ

치매를 인지하는 데에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 같다. 나도 그 당시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터라 완전히 객관적이긴 어려웠는데 다행히 노인복지를 공부한 언니와 자주 대화를 하며 유심히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 판단할 수 있었다.

공원-복구됨.png 따르르르~~~ㅇ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기에 이르렀다. 전.화.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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