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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Apr 02. 2021

치매인가?

치매도 육아처럼 3

 “어쩐 일로 전화를 다했어? 너네는 전화요금 아껴서 부자 되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리다가 주말을 넘기고 월요일에 전화드렸더니 잔뜩 날 선 목소리로 날벼락같은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

 ‘어제 전화를 드리지 않아 서운하신가? 아니 하루가 아니라 열흘을 전화 안 드렸대도 그렇지, 어쩜 이러실 수가 있지? 나로서는 힘껏 한다고 했는데.. 내가 더 서운하네 뭐..’

 이 느닷없는 폭언은 결혼생활 동안 듣고 잊지 않기로 결심한 몇몇 서운한 말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내 맘에 콕 박혀서 시시때때로 고부관계에 생채기를 냈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무개가 내 반지를 훔쳐갔어!”

 “아무개가 빌린 돈을 안 갚아!”

 “아무개는 내가 베푼 은혜도 모르고 날 찾지도 않아!”

 “아무개는 나한테만 식사비를 내게 해!”

    …

 세상 모든 의심과 분노, 실망과 서운함은 모조리 어머니 차지였다.

 주변 사람에 대한 험담이나 불평, 당신의 신세한탄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만 폭포수처럼 쏟아내기 시작했고

말씀이 길어질수록 노여운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모노드라마 배우처럼 일방적으로, 그리고 매번 같은 극을 되풀이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셨는데 매일매일 끝나지 않을 듯 이어졌다. 이쯤 되니 혹시 치매.. 인가?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한동안 갸웃거리기만 했던 이유는 그 전에도 종종 하시던 말씀이 섞여 있기도 했고 사실이나 정황이 맞아떨어져서 나조차도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이야기가 제법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댁에 가면 이상한 점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어머니가 국간장과 조림간장을 구분하지 않고 엉뚱하게 사용하기도 하고 음식 간을 맞추지 못해 맛이 형편없어졌을 뿐 아니라 요리 종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정리정돈을 누구보다 잘하시던 분이 물건들을 보이는 곳에 늘어놓기 시작했고 장롱이 비어있어도 간이 행거에 옷을 수북이 걸어두셨다. 불과 몇 분 전에 했던 말씀을 새로운 듯 다시 반복하시는데 숫자라든가 요일, 장소 같은 디테일이 자꾸 달라졌다.  또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어떤 화제로 시작하든 결국 화제의 초점을 본인에게로 돌려 기승전 어머니로 끝났고 때때로 나나 아이들에 관해 궁금한 것을 물으실 때조차 내가 물음에 대답을 채 끝내기도 전에 새로운 질문을 하거나 다른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다.

 그냥 성격이거니 생각하기엔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이상하다 싶어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치매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하니 ‘원래 그러셨는 걸 뭐. 나이가 드시니 더 그러신 거지.’라며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내가 유난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야, 그래도 이건 좀 다른 것 같아.. 나도 10여 년 어머니를 겪었는걸? 나로서는 너무나 낯선 어머니의 모습인데...

하지만 남편이나 시댁 가족들에게 '2년 전 인지장애 진단을 받았으니 그 사이 얼마든지 치매로 진행되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자리할 곳이 없었다. 어머니 당사자의 검진은커녕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이 첫 번째 난관이 될 줄이야... 

 나는 이상하게 생각되는 사례들을 계속 이야기하며 건강한 사람도 검진은 필요한 거니까 검사를 한 번 해보자고 설득했고 결국 MRI와 치매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알츠하이머-치매였다.ㅜㅜ

 치매를 인지하는 데에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 같다. 나도 그 당시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터라 완전히 객관적이긴 어려웠는데 다행히 노인복지를 공부한 언니와 자주 대화를 하며 유심히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 판단할 수 있었다.

따르르르~~~ㅇ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기에 이르렀다. 전.화.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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