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고 아리셉트와 렉사프로라는 약을 처방받았다. 아리셉트는 기억과 인지능력을 향상해 치매 증세를 완화, 지연하기 위한 약이고 렉사프로는 항우울제다. 행동요법이나 인지요법 같은 비약물치료도 병행하면 좋았겠지만 그 당시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본인도 인지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의기소침해지긴 했어도 변함없이 문화센터에 다니며 사회생활도 이어가고 계셨기에 치료센터에 나가려 하지 않았고, 장기요양등급 심사에서도 등급외 판정을 받은 터라 치료사의 방문서비스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약물치료는 어머니에게 꼭 필요했다. 문제는 약을 어떻게 매일, 빠짐없이, 드시게 하느냐였다.
우선 이 약은 경도인지장애에서 더 이상 치매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뇌 영양제'라고 말씀드렸다.
매일 전화를 걸어
“어머니! 오늘 뇌 영양제 드셨어요?” 하고 여쭤보면 어김없이
“그럼! 약은 잊지 않고 꼭 먹지! 난 약 먹는 덴 선수야 선수! 호호호” 하신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면 제대로 드시지 않고 모아두기 일쑤였고 어느 때는 남은 약을 집안 깊숙이 숨겨두어 약을 찾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매일 꼭 드셔야 하는 약을 드시지 않는 것도 고민거리였지만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나쁘다 싶으면 동네 병원에 가서 실제 상태보다 더한 통증을 호소하며 약을 처방받아 그 약을 과다 복용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치매약뿐 아니라 식탁 위에 동네 약국 약봉지가 수북했는데 살펴보면 3일 치 감기약을 처방받은 지 하루 만에 같은 약을 또 처방받아 사 두신 경우도 있고 어떤 약 봉투에는 다른 약이 뒤섞여 있기도 했다. 남은 약만으로 도대체 약을 어떻게 복용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고민 끝에 어머니 몰래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상담을 청했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 선생님도 치매환자인지 모른 채 어머님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오셔서 곤혹스러웠노라 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앞으로 어머니가 오시면 적당히 타일러주시거나 비타민이나 가벼운 소화제 같은 약을 처방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어머니는 앓고 있는 지병도 없었고 건강한 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건강상태가 객관적으로 염려스러울 때는 전화로 말씀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정말 친절하게 그러마 승낙해 주시고 번거로운 상황도 기꺼이 감수해 주셔서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다. 물론 약국이나 한의원에도 찾아뵙고 도움을 구했다.
병원뿐 아니라 단골 미용실에도 너무 자주 가서 염색과 파마를 하시곤 해서 미용사님께 기억력이 너무 떨어지셨으니 미용사님이 판단하시고 머릿결이 너무 상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사실 내가 그 동네에 같이 살지 않으니 좋은 이웃이라 해도 무턱대고 믿을 수 없어서 어머니 병을 알리기가 꺼려졌다. 혹시 혼자 사시는 어머니가 해를 입으면 어쩌나 싶어서... 옛날에는 한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지내며 치매어른을 함께 돌보고 서로 도왔다는데 지금은 상상도 기대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먼저 사정을 말씀드렸을 때 냉담하게 반응하신 분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걱정해주시고 기꺼이 협조해 주셨다. 좋은 이웃은 오늘도 내 곁에 있다. 찾아 나서기만 하면.
매일 약을 챙겨 드리기 어려운 거리에 살 때 썼던 방법
1단계(날짜, 요일 인지가 가능한 시기: 어머니의 경우 경도인지장애 단계 정도였다)
-> 시중에 파는 요일별 약 케이스 사용하기
-> 약 봉투에 일일이 날짜 써 놓기
2단계(날짜 인지는 어려우나 달력보기는 가능한 시기: 전화를 걸어 달력에서 오늘 날짜를 찾게 함)
-> 달력에 약 붙이기(큰 달력에 스테이플러로 찍어 두거나, 투약용으로 제작된 달력을 사면 된다. 어머니의 경우 한 번도 빠짐없이 약을 잘 챙겨 드신다며 달력에 약을 붙이는 방법은 극도로 싫어하셔서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예쁜 약 달력에 넣어드렸는데 그것은 어머니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보호자의 관리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