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근데요... 술을,, 아주 가끔씩만 마시면요, 그리고 그마저도 조금씩만 마신다면요... 그 정도는 괜찮겠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질문을 할 때의 나의 절박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내면에 있는 커다란 기쁨의 방의 전등이 하루 아침에 영구히 나가버린 듯 했다. 다시는 그 방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갑작스러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운 나머지, 단지 정보를 전달해 주는 역할만을 맡고 계실 뿐인 간호사님께 마치 허락을 맡듯 애원조로 묻고 있었다.
유방암 수술 전날, 간호사님이 병실에 오셔서 병실 침대 위에서 수술 후의 관리 사항들이 적혀있는 작은 안내문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같이 읽어 나가며 부연 설명을 해주던 중이었다. 수술 후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라는 내용 밑에 술을 금하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자 불편한 마음이 입 안에 슬며시 들어온 생선 가시처럼 마음 속에서 걸리적 거렸다. '안 된다' 라고 씌여 있지만 조금은 괜찮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그리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을 해보아야 겠다는 불안함.
간호사님의 대답은 친절하면서도 단호했다.
"아뇨. 안 되십니다. 환자분의 유방암은 호르몬성이기 때문에, 작은 맥주병 한 캔만 마셔도 유방암이 재발할 가능성이 10% 이상 올라갑니다. 술은... 이제 안되는 겁니다."
안 되는 거군요... 라는 말을 하긴 한 것 같은데, 어째 혀 끝에서 맴돌다 도로 들어가버렸다.
설명을 마친 간호사님이 안내책자를 병실 침대 위의 탁자에 놓아두고 병실을 나갔다. 드라마에서나 보아오던 대형 병원 환자복을 입고 사방에 커텐이 쳐진 병실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웠다. 그랬다. 나는 수술을 앞둔 유방암 환자였고, 과거에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내려놓아야 할 몇 가지 아이템들을 대면해야 했다. 갑갑해진 가슴이 커텐 안의 정체된 공기를 있는 힘껏 빨아들였다가 훅 내뱉었다.
나에게 있어 술은 '남편과 함께 만들어 가는 러브 스토리' 다.
우리가 처음 단 둘이 만났던 곳도 상하이 한인타운의 어느 와인바에서였다. 와인을 한 잔씩 함께했던 그 날, 우리는 단숨에 서로에게 빠져버렸다. 남편을 만나기 전의 나는, 성경책에 '취하지 말라'고 씌여 있는 걸 본 날부터, 그 말을 곧이 곧대로 지키느라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살아온 아스퍼거 (자폐의 일종) 소녀였다. 그 누가 술 한잔 함께하자고 해도 모조리 거절했던 굳건한 신념이 남편을 만난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5천원짜리 와인이든, 50만원짜리 와인이든, 남편과 함께 기울이는 그 모든 와인잔 속의 와인이 소중했고 특별했다.
"오늘 안주는 어떤 걸 만들어 볼까?"
이 질문은 아무리 반복해도 무뎌지지 않는 설레임을 몰고 왔다. 신혼 때에는 와인을 마실 때 남편이 골뱅이 무침 소면을 만들어 와인과 곁들이게 해주곤 했었다. 요리 실력이 늘어가면서 안주도 점점 더 맛있어졌다. 그날 그날의 날씨나 기분에 따라 국물 거의 없이 볶은 떡볶이를 와인과 곁들이기도 했고, 갖가지 과일과 치즈로 꾸민 한 접시를 만들기도 했고, 생선이나 고기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 별다를 것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단숨에 입이 귀에 걸리고 가슴이 콩닥거리게 만들어 주는 풍경 - 그게 나에게는 남편과 마주하는 술상이었다.
몇 년 전, 헤어컷이 마음에 쏙 들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남편이 나를 압구정의 한 이자카야로 데리고 갔다. 젊었을 때 종종 가던 오래된 집이라고 했다. 자신은 생맥주 한 잔을, 그리고 나를 위해서는 '히레 사케' 라는 처음 들어보는 술을 주문해 주었다.
"이걸 맛보면 오늘부터 이 히레 사케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종이 될거야. 내가 백프로 확신해."
남편이 나를 바라보며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 그게 뭐냐고 물어도 일단 맛을 보라며 대답해 주지 않았다. 잠시 뒤, 이자카야 사장님께서 뚜껑이 있는 아름다운 일본 술잔을 두 손에 고이 들고 다가오셨다. 뚜껑을 열기 전부터 이미 나는 내 앞에 놓인 술잔에서 풍기는 향에 매료되고 말았다. 술잔 안에는 살짝 태운 복어의 지느러미가 사케 안에 담겨져 있었다. 따끈한 술을 홀짝 한 입 맛본 순간, 남편 말대로, 히레 사케는 나의 '넘버 원'으로 등극했다.
"거 봐. 딱 당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지? 사장님, 여기 히레 사케 한 잔 더요~"
한잔 더, 한잔 더, 하다가 네 잔을 더 시켜 먹었다. 남편이 '이제 그만'을 외칠 때까지.
남편은 그 날 이후로 그 이자카야에 가서 히레 사케를 또 맛볼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나를 지켜보다가, 아예 집에서 히레 사케를 만들어 마실 수 있도록 복어 지느러미와 토치를 선물해 주었다. 이왕 만드는 거 제대로 만들어 보자고 사케를 알맞게 데우기 위한 온도계도 샀다. 분위기도 내자고 그릇 가게에 찾아가서 마음에 드는 사케 잔도 남편 것 하나와 내 것 하나를 샀다.
한잔 하기로 한 날, 남편은 복어 지느러미를 토치로 태우고, 나는 온도계로 사케를 데웠다. 둘이 신이 나서 합작해서 만든 히레 사케가 어찌나 신기하고 좋던지 사진을 찍고 또 찍어댔다.
막걸리는 또 얼마나 맛있나. 막걸리 중에서 우리 부부의 원픽은 한살림에서 나온 생막걸리였다. 구수한 감자채전을 바삭하게 구워서 상큼하면서 고소한 막걸리와 같이 먹는 그 맛은 일품 중의 일품이었다. 가끔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과자를 아그작 아그작 씹으며 막걸리를 이따금씩 한 모금 넘겨주는 것도 좋았다.
나와 만나기 전에 음주가무의 신이었던 남편은 이렇듯 멋진 신세계를 열어주는 나만의 완벽한 가이드였다.
......
이 모든 일들이 이제 나에게 과거가 된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에는 술의 맛과 향을 즐길 일도, 남편과 술을 놓고 데이트 하는 일도 없다.
뭐, 십년 동안이나 술을 진심으로 즐기긴 했지. 그런데 십년으로 충분했던가?
흥, 충분은 무슨...
병상에 똑바로 누운 채 혼자 주저리 주저리 하고 있었다. 천장에 사랑했던 술들이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져 갔다. 프랑스 와인, 이태리 와인, 이런저런 사케들 그리고 아름다운 일본식 잔에 담긴 히레 사케, 막걸리... 남편과 술을 한 잔 하기 전에 거울 앞에서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듬었던 내 모습도 보였다가 사라졌다. 마주 보는 두 와인잔 사이에 켜 놓곤 했던 작은 촛불 대여섯개도 잠시 빛을 발하다가 사그라졌다.
내 영혼은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 것인가. 왜 술이 주는 즐거움으로부터 오늘부로 탈퇴하라고 갑작스레 나를 떠미는 건가.
술을 사랑한다. 남편과 함께하는 술 데이트를 사랑한다.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건 술이 주는 감각적인 기쁨이고, 술 데이트가 주는 깊은 즐거움이다.
그렇다면 술이 인생에서 없어지는 것이 꼭 술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이 없어지는 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술 없이는 술을 통해 누렸던 남편과의 친밀감과 설레임을 느낄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나의 경험은 지극히 제한적이니까. 주제를 불문하고, 내가 지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나 변화를 맞닥뜨리게 되어 당황할 때마다 남편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하는 말이 있었다.
우리가 너무나 싫다고 느끼는 변화들도, 그 변화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찾다보면, 결국에는 그 변화가 우리를 위한 가장 좋은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고.
믿어보자. 마음을 좀 열어보자. 문이 닫히면 창문이 열린다고 하듯이, 술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기쁨의 터널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리니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던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한 쪽 어깨를 찡긋 올리며 '조금 슬프지만 나 괜찮아요' 라는 의미가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남편도 똑같이 한 쪽 어깨를 실룩 들어 올리며 미소를 되돌려 주었다. 남편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남편이 조용히 마음으로 전해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괜찮아. 모르긴 몰라도, 우린 더 행복해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