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으로 향하는 트랙

by 청아

어느 날, 바람쐴 겸 갔던 서점에서 어슬렁 거리던 중에 멀찍한 곳에 있던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이 나에게 이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마치 숲길을 걷던 중에 어느 풀잎 하나가 머금고 있던 이슬방울이 햇빛에 비추어 한 순간 반짝인 듯 했다. 나는 홀린 듯 그 책 앞으로 다가갔다. 책의 이름은 <와일드> 였다. 손을 뻗어 책을 꺼내보려 하던 찰나에 남편이 저 쪽에서 나를 불렀다. 얼핏 보니 계산대에서 책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남편 뒤로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얼른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남편을 도왔고, 책에 관한 일은 이내 잊어버렸다.

서점에 다녀온 이틀 뒤에, 우리는 빌렸던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 대출 반납 카운터 앞에 서서 내가 반납하는 책을 받아준 사서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살짝 굽혔던 몸을 편 순간, 사서 분 뒤에 비치해 둔 예약 서적들 중에 꽂힌 어느 책 한권이 은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

나도 모르게 내뱉은 소리에, 데스크에 앉아있던 사서 님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라는 표정으로 눈썹을 살짝 찌뿌리며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 문제 없다는 미소로 사서 님을 안심시킨 후 다시 그 책으로 눈을 돌렸다. <와일드> 였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그 책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있었다. 리즈 위더스푼이 주연을 맡았다. 처음 영화 포스터를 보았을 때는 왠지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서 보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 스토리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은 막연하고도 강한 느낌에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주에서 보내온 택배를 받듯 만나게 된 <와일드> 는 나의 무의식의 심해에 지진을 일으켰다. 이제까지 수많은 영화들을 보여 울고 웃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나에게 전하는 무언가는 통상 내가 영화를 보며 해왔던 감정이입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셰릴은 사랑하는 남편과 이혼하면서 자신의 성을 Strayed 로 바꾼다. 영어로 strayed(스트레이드)는 길을 잃었다는 뜻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즉 '길을 잃은 셰릴'의 모습이 그녀의 자화상이었다. 길을 잃었다는 건 자신을 잃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이는 나로서의 진정한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지만,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던 나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는 PCT 의 출발 지점에 자신을 세운다. PCT (Pacific Crest Trail) 는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서 미국의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세 개 주를 통과하여 캐나다의 매닝파크에 이르는 4,285km 에 달하는 길고 긴 꿈의 길이다. 그녀에게 그 어려울 일을 하라고 등떠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길을 완주한다는 게 그녀에게 어떤 이득일지, 아니, 이득이기는 할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혼자서 그 길을 걷다 강도, 물 부족, 독뱀, 부상 등등으로 그 어떤 도움조차 받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죽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가는 게 맞는 그 길을 혼자서 떠나게 된 것은 아픔으로 잃어버렸던 그녀 안의 작고도 큰 존재가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그녀를 인도해서 였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있었는지도 몰랐던 등대가 탁 하고 켜지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바깥 세상이 너무 어두운 것 같아서 뭐라도 좀 보여야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느낄 때 예고 없이 켜지곤 했던 그 등대는 밖을 시원하게 비추고 싶은 내 뜻과는 달리 한 번도 바깥을 비추는 법이 없었다. 항상 안으로 켜졌다. 등대는 어두운지 어떤지 알지도 못했던 마음 안에서 내가 있어야 할 상태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고요한 듯 찬란한 빛을 비추어 인도해 주었다. 그런데 안이 밝아질 때면 안과는 상관없는 세계라고 생각해 왔던 어두웠던 바깥에서는 그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해돋이가 일어나곤 했다.


셰릴에게 PCT 는 그녀 안의 등대를 따라 걷는 트랙이었다. 트랙을 걸어 나가면서 등대가 비추어 주는 과거의 나, 용서할 수 없는 나, 견딜 수 없이 아픈 나 등등 수많은 나들을 하나하나 대면하고 완전히 느낀 후 놓아주었다. 길을 걸으며 만난 그 모든 '나' 들이 합쳐져 지금의 그녀를 이루고 있었다. 야생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하나의 숲을 이루는 것처럼. 야생이라는 뜻인 'WILD' 는 바로, 존재하는 그대로 변화하는 그대로 그저 완벽할 뿐인 그녀 자신이었다.

4,285 km 의 기나긴 트랙 끝에서 마침내 그녀는 야생 그 자체인 자신을 깨닫게 된다.


자아를 찾기 위한 셰릴의 프로젝트가 과연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남편과 이혼하고 나서 마약에 찌들었을 때부터였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많은 남자들과 남편 몰래 관계를 가졌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엄마가 한없이 내어주던 게 사랑인 줄도 모르고 철없이 받기만 하던 십대 때부터였을까. 무엇이든 원래부터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다가, 잃어버려야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것을 다시 찾아서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을 가지게 되는 코스들의 도르마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셰릴이 태어난 순간부터 그녀의 자아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얼마 전에 유방암을 2년만에 다시 진단받았을 때 나는 내 마음 속에서 PCT 의 출발 지점에 서서 끝이 없이 장대하게 펼쳐지는 트랙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과연 저 4천여 킬로미터를 걸어낼 수 있을까. 만약 걷는다면 깨달음 같은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까. 내가 다치거나 상해 버리진 않을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이걸 꼭 가야 하는 건가.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의 삶 자체가 일종의 커다란 PCT 아닐까. 돌아보면 좋은 경험도, 싫은 경험도, 결국에는 모두 나에 대한 무언가를 알게 해주었고, 나 자신과 내가 가지는 감정들을 조금씩 더 가까이에서 대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길을 걷다가 예상치 못한 어느 순간에 길 위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던 큰 뱀과 마주한 것처럼, 살다가 유방암이라는 무서운 존재에 놀라게 되기도 하는 것 아닐까. 그 코너를 지나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 그 감정들이 나 자신에 대한 어떤 진실을 드러나게 해줄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잘 지나가보자. 셰릴이 뱀을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와일드> 를 만났던 당시에는 그 다음 달에 내가 유방암을 또 한번 대면하게 될 줄 꿈에도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어쩌면 두려운 모험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우주가 한 발 앞서 던져준 메세지 인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세팅된 트래킹 코스이니 마음의 발걸음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내딛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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