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린 나를 품에 꼬옥 끼고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주곤 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다정하면서 장난기가 있었고, 언제나 엄마만의 편안한 리듬이 있었다. 엄마의 살내음을 맡으며 엄마의 목소리에 나의 마음을 실은 채 엄마 손에 들린 책 속의 글자들을 눈으로 따라가는 것처럼 좋은 기분이 또 없었다. 책을 읽으면 엄마의 자궁 안에 편안히 자리 잡고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스퍼거인 나에게 책이라는 존재가 일단 그렇게 인식이 되고 나자, 나는 하루 종일 책만을 생각했다. 책이 너무 읽고 싶어서 유치원에서 돌아와 신발을 벗자마자 내 몸만한 노란색 유치원 가방을 맨 그대로 아빠 엄마가 만들어 주신 나의 서재방으로 직행해 들어가서는 밥 먹을 때까지 나오지 않곤 했다. 그 방은 나만의 놀이 동산이었다. 온갖 보물같은 동화책들과 위인전으로 가득한.
그 날도 나는 유치원에서 돌아와 혼자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빠가 얼마 전에 새로 사주신 위인 전집에서 마음 가는대로 이 책 저 책 골라가며 읽던 중이었다. 그러다 <나이팅게일> 책을 책장에서 꺼내어 펼쳐들었을 때, 책의 무언가가 나의 내면의 어떤 부분을 진동시키는 듯한 신기한 느낌을 처음 경험했다. 다섯 살이었던 나는 내가 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설레임과 흥분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튼 좋았다.
<나이팅게일> 책이 다른 동화책들보다 훨씬 두꺼웠음에도, 나는 책장 앞의 방바닥에 앉아 단숨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읽어버렸다. 그 땐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감정이 바로 '감동'이라는 거였다.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닌데, 가슴 안이 알 수 없이 말랑말랑해 지면서 어떤 묘한 에너지로 채워지는 듯한 신기한 기분, 그건 감동이었다.
생애 첫 감동을 맛본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자마자, 곧바로 책의 첫 페이지로 되돌아갔다. 두 번을 읽어도 감동이 줄어들기는 커녕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The lady with the lamp. (등불을 든 여인)
나이팅게일의 별명이라는 이 말에 나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지고 조그마한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렸다. 다섯 살의 세계관으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온전히 감성만으로 그 이미지에 다가갈 수 있었다. 나이팅게일이 밤에도 등불을 들고 크림 전쟁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체크하러 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등불의 빛을 보고 사랑과 감사로 가득해지는 부상당한 병사들의 모습도 그렸다. 뭔지는 잘 몰라도, 나의 작은 가슴이 '이거야!' 하고 외치는 듯했다.
나이팅게일이 어떻게 간호사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당시 간호사는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직업이었다. 부잣집 딸이었던 나이팅게일이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집안에서 극구 반대했던 게 당연했다. 그런 주변 환경 속에서도 오직 자신의 영혼이 비추는 빛을 따라 간호사가 되어 전쟁터를 누볐던 여정이 다섯 살 소녀에게도 참 멋져 보였다.
해가 나의 서재방을 화창하게 비추던 그 날의 감동을 조용히 회상하다 훗 하고 웃음지었다. 저 날 이후로 나의 삶은 길고 긴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여정으로 나를 안내한다. 어느 날 더 이상은 아파지면 안되겠다는 자각이 들었을 때 내가 붙잡을 수 있고, 붙잡아야 했던 단 하나의 진실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함으로써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내 안의 빛은 어디를 비추고 있는지. 지금 아둥바둥 내가 밝히려고 하는 내 영혼의 빛을 나는 다섯 살 어린 아이였을 때 아무런 노력 없이도 이미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장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감동을 느끼던 그 날의 나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40년쯤 전의 그 날을 회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이팅게일> 책을 두 번째 다 읽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Lady with the lamp (등불을 든 여인) 가 되고 싶은 거였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야!' 라는 강한 확신과 나를 찾았다는 기쁨이 나를 가득 채웠다. 당장 엄마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졌다. 나는 방 밖으로 뛰쳐 나갔다.
엄마는 가사 도우미 이모님과 함께 거실의 마룻 바닥에 앉아서 수건을 개키던 중이었다. 방 밖으로 나온 나에게 미소짓는 엄마를 보자 기뻤던 마음이 더 커져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졌다. 나는 힘있게 외쳤다.
"엄마! 나 간호사가 되고 싶어!"
엄마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아마도 내가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면 엄마는 기뻐했을 것이다. 엄마에게는, 의사는 훌륭한 직업이고 간호사는 천한 직업이었다. 엄마는 경멸이 가득 든 말투로 나를 찌르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그래! 너는 커서 간호사나 해라!"
엄마 옆에서 수건을 개키고 계시던 이모님이 엄마에게 안 들리게 나를 타이르듯 조용히 말씀하셨다.
"얼른 가서 엄마한테 가서 간호사 안 한다고 그래..."
감동을 처음 경험했던 그 날, 나는 생각 없이 느끼는 순수한 감동은 수치스러운 것이며 경멸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배웠다. 안방에 문을 열고 들어가 속상해 하고 있던 엄마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되고 싶어했던 그릇된 마음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면서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표현할 때마다 조심스러워졌다. 엄마의 얼굴에 어렴풋이 스치는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감동을 느끼는 나 자신을 점점 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꺼진 등불을 든 채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유방암은 나의 등불에 불이 꺼져 있다는 빨간색 경고등 아닐까. 혹은 이제 불꺼진 나의 마음의 등불에 다시금 불을 붙일 시간이라고 영혼의 시계에서 울리는 알람일 수도 있다.
켜져 있던 불이 꺼졌던 과거의 아픈 기억들에도, 꺼져 있는 등불에 다시 불을 지피는 어렵지만 황홀한 지금의 작업들에도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합쳐져 완벽한 퍼즐을 이루고 있는 게 지금의 나니까. 전인권 님의 <걱정 말아요>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도, 그 노래처럼, 새로운 꿈을 꾸겠다고 말하려 한다. 두 손에 나만의 등불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