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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Nov 16. 2023

시키는대로 공부하면서 나를 잃어버리다

짜장덮밥

열 살때 쯤이었나보다. 나의 과외 생활이 시작된 게.


나의 하루는 과외 예약으로 꽉 차 있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엄마가 준비해 놓은 간식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딩동 소리가 울렸다. 첫번째 선생님의 도착이다.

그 날의 첫번째 선생님과 수업을 마치고 나면 또 딩동 소리가 울렸다. 두번째 선생님의 도착이다.

두번째 선생님과 수업을 마치고 나면 가족 네 명이서 엄마가 준비한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칠 때쯤 딩동. 세번째 선생님이 오셨다.

서너개의 과외 수업을 마치고 나면 각 과외 수업에서 받은 숙제를 했다.

과외 선생님들의 피드백에 따라 거의 주기적으로 엄마에게 맞으면서 혼났다. 엄마는 평소에 식사 준비를 열심히 하시는 편이었는데, 나를 때리며 혼냈던 날에는 식사를 평소보다도 더욱 훌륭하게 준비해서 내가 먹도록 했다. 요즘에도 맛있는 걸 먹으면 속상했던 일을 까맣게 잊곤 하는 게 아마도 이 때 그렇게 길들여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홉시나 열시쯤 모든 일정을 마치면 저녁에 가족 네명 다같이 아파트 단지 상가 안에 있는 비디오 가게에 가서 보고 싶은 영화의 비디오들을 빌려오거나, TV 앞에 모여앉아 빌려온 영화를 보곤 했다. 그 시간에 나는 숨을 쉬었다.

다음날 일어나면 같은 일정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살아가니,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다니던 지방의 어느 학교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여겨졌다. 과목을 불문하고 각종 경시대회에서 상을 탔다. 조회 시간마다 단상 앞으로 불려나가 상을 받았다. 모아둔 상장들이 한 권의 책 같이 두꺼워졌다.

그러자 학교에서도 많은 부분 나의 편의를 봐주었고 특별히 대우 해주었다.

우월감의 달콤함을 이 때 처음 맛보았다.

스스로에 대한 자아상이 어줍잖게 균형을 잃어갔다.


전교에 나를 모르는 학생이 드물었지만 그 중에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친구를 사귈 마음의 여유도, 시간의 여유도, 붙임성도 없었다. 누구와 어떻게 친해지면 좋을지를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너네보다 우월하거든' 라고 말하는 듯한 도도한 나에게 자진해서 다가와 마음을 열어줄 학생은 없었다.

청소년기를 그렇게 보낸 탓인지 지금도 나는 사회성이 많이 떨어져서 친구가 몇 없다.


운동은 나의 일과에 없었다. 공부만 하기도 벅찼다.

공부하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하느라 많이 먹으면서 24시간 거의 움직이지 않으니 얼마 안 있어 내 몸의 근육은 죄다 없어졌다. 몸이 점점 차가워졌고, 그에 따라 기력도 줄어들었다. 하루 종일 공부하는 일정이 점점 힘들고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자 마음의 기력도 줄어들었다. 나는 늘상 어두웠고 우울했고 무거웠다.


앉아만 있으니 허벅지와 엉덩이에 급속도로 많은 지방이 생겼다. 허벅지의 살이 온통 터서 보기 싫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몸도 보기 싫었다.

집 근처 옷가게들을 온통 뒤져봐도 맞는 바지가 없어서 살 수가 없었다. 굉장히 먼 어딘가의 옷가게 거리까지 가서 내가 입을 수 있는 바지를 겨우겨우 한 벌 찾았다. 덩치 큰 아저씨나 입을 것만 같은 엄청나게 큰 통바지였다. 엉덩이와 허벅지만 특히 커진 상태에서 큼직한 통바지를 입자, 다리가 기형적으로 짧아 보였다. 그래서 13cm 통굽을 바지 밑단에 가려서 신고 다녔다. 살이 찐 데다 그렇게 높은 굽을 신으니 거구처럼 보였다.


하루 종일 책을 보다보니 시력도 점점 나빠졌다. 두꺼워진 안경 렌즈 뒤로 아주 소박하게 뜬 두 눈이 있었다.

여성으로서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 느끼기 시작하는 사춘기의 마음은 피어나자마자 자신없고 슬퍼졌다.


그런 내 마음을 엄마에게 털어놓으면 엄마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못났다고 다그쳤다. 엄마는 그렇게 하면 내가 씩씩해질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공감받지 못한 마음은 내 무의식 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그 때는 몰랐다. 그렇게 생각을 없앤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과외를 받으며 사는 생활이 나의 가장 소중한 것 - 나의 자아를 죽이고 있었다는 걸.

남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니 내가 나를 만들어갈 여지도 필요도 없었다. 나의 목표점들은 엄마가 정한 것이었고, 나의 매일은 내가 아닌 엄마가 계획한 것이었다.

내가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얼마 만큼 잘 하고 싶은지, 무엇은 하고 싶지 않은지,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을 목표로 삼고 싶은지... 나를 느껴보려 하지 않았다.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죄책감만을 느꼈고, 다른 느낌들은 죄책감 뒤에서 점차로 무뎌졌다.

자아를 만들어 가는 성장기의 시기를 나는 이렇게 과외 속에서 흘려 보냈다.


남편이라는 제삼자가 나를 자세히 겪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많은 모습들에 혼란스러워 하기 전까지, 나는 나의 내면이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크게 불편하거나 답답하지도 않았다.


요즘들어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꿈꾸는지를 느끼지 못해서 답답하고 불편하다는 사실에, 힘들지만, 깊이 감사한다. 느낀다는 건 살아나고 있다는 거니까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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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짜장덮밥을 만들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보는 날에는 엄마가 나를 데리고 집 옆의 백화점으로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점심으로 사주시곤 했다. 먹는 내내 엄마가 공부에 대한 설교를 했던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달콤짭짜름 했던 짜장면의 맛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 짜장덮밥 >


돼지고기 삼겹살 덩어리를 수육을 한다. (바로 볶아도 되는데, 그렇게 하면 질겨질 때도 있어서, 보드라운 식감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수육을 한다.)

수육한 삼겹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놓는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다진 파, 양파, 마늘을 볶는다. (양파가 많은 게 맛있는 것 같다. 나는 양파 두 개를 넣었다.)

간장을 프라이펜 바닥에서 잠시 끓였다가 같이 볶는다.

고기를 넣고 청주를 넣고 볶아준다. 후추도 좀 뿌려준다.

된장을 조금 넣어 같이 볶는다.

고기 쪽에 생강가루와 설탕을 좀 뿌리고 같이 볶는다.

소금도 좀 뿌려준다.

코리앤더 씨앗을 으깨서 조금 넣어 주어도 좋다.

한살림 짜장가루를 넣고 같이 볶아준다.


물을 붓고 애호박을 넣고 끓인다.

간을 보고 단맛이 덜하면 조청을 한 티스푼 넣어 주어도 좋다.


개인취향이지만, 고수와 곁들여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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