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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Nov 23. 2023

마음이여 아름다움에 응답하라

육개장과 초코칩 통밀쿠키

딸아. 마음을 열고 주위를 둘러보렴. 보이는 것 모두가 신이라는 최고의 디자이너가 만든 작품들이란다.


엄마는 나와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별 생각 없이 지나던 거리를 다시 바라보면 정말로 그랬다. 나는 아름다운 것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이었다. 엄마와 나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주변 것들의 아름다움을 찾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 기쁨을 같이 느꼈다.


내가 경험하기로는 무기력은 무감각을 동반하는 것 같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건, 어떤 것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무기력을 앓으면서 나는 나의 마음과 감각들에 상당히 무뎌져 있었다. 엄마가 수시로 일깨워주던 아름다움은 메말라 가던 나의 정서를 가뭄에 이슬비 내리듯 적셔주었다.


엄마는 식사 후에 고급스러운 찻잔에 커피를 타서 나와 함께 마시는 걸 좋아했다. 한 송이 꽃 같은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찻잔이었다. 다른 문양 없이 크리미한 진주색이었고 가장자리에는 금이 도금되어 있었다. 우아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힘이 있어 보였다. 엄마는 백화점에서 그 찻잔을 본 순간 나와 잘 어울리겠다고 기뻐하면서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는 예쁜 찻잔들이 여럿 있었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그 찻잔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프림을 듬뿍 넣은 인스턴트 커피의 평범한 색깔도 그 찻잔에 담기면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브라운이었다. 식사를 마치면 나는 엄마에게 그 찻잔에 커피를 타달라고 해서,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며 찻잔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행복해하곤 했다.


엄마는 패션을 좋아했다. 엄마와 함께 돌체앤가바나나 구찌,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유럽에 여행을 갔을 때도 그 곳 사람들이 얼마나 멋지게 옷을 입는지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수백장을 카톡으로 엄마에게 보내주었다. 상하이에 살 때도 옷 쇼핑을 하러 엄마와 자주 백화점에 갔다. 엄마는 나에게 예쁜 옷을 사입히는 걸 좋아했다. 엄마 자신의 옷을 산 적은 드물었지만. 그러다 급기야 시장에서 원단을 사서 옷을 만들어 나에게 입히기도 했고, 스웨터를 떠주기도 했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옷들은 기성복들과는 달리 엄마의 멋진 개성이 녹아 있었고, 나의 체형을 최대한 배려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옷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게 좋았다.


엄마는 나에게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싶다면 저 새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배우라고 했다. 당시 상하이에서 살던 아파트 단지를 한바퀴 돌다보면 아름다운 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새들의 색들을 자세히 살펴보다 경이를 느끼기도 했다. 어떻게 저 옅은 하늘색에 저런 오렌지색을 매치시킬 생각을 했을까. 카키색이 저토록 아름다운 색깔이었나. 저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내 주변을 날아다니며 노래하고 있었단 말인가.


딸아 이것 좀 보렴. 이 색과 저 색이 이렇게도 잘 어울리는구나.


엄마는 끊임없이 나에게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었다. 주말에 온 가족이 다같이 대형 서점에 가서 명화들이 담긴 그림집을 사주기도 했다. 엄마는 거장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계속 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도 그런 감각이 자라날 거라고 했다.


무기력으로 죽어가던 나에게 호흡기를 달아준 격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껴보도록 끊임없이 이끌어 주었던 건.


엄마는 몰랐겠지만...

엄마가 나를 패면서 키웠던 게 무기력증의 주된 원인이었던 것 같은데

아파진 내가 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잡아준 것도 엄마였다.


엄마의 품 안의 자식이었던 나는 엄마의 상처만큼 아팠고 엄마의 기쁨만큼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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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남편과 함께 가서 꽃을 산다.

이번 주 우리와 함께할 꽃은 누굴까.. 꽃집에서 여러가지 꽃들 앞에 서서 그 날 나를 부르는 꽃이 누구인지를 느껴볼 때 내 마음을 설레임으로 가득해진다.

남편은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아서 내가 급한 마음 없이 찬찬히 꽃들을 느껴보도록 기다려 준다. 남편이 성격이 급한 편이었기 때문에 남편 옆에서는 내가 습관적으로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고 배려해 주는 것이다.


이번에는 꽃을 서로 다른 색깔로 두 봉지를 샀다. 겨자색과 벽돌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그 둘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에 자리한 아름다움 한 꾸러미가 따스한 촛불처럼 나의 마음을 밝히고 있다.

가만히 바라보면, 저 수많은 꽃잎들의 결을 따라 사랑이 켜켜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내 마음의 결에도 저 꽃잎처럼 사랑이 스며든다.

내 마음도 하나의 꽃잎이 되고 한 송이의 꽃이 된다.


아름다움으로 나의 마음이 밝아질 때, 아름다움을 나와 함께 기뻐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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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을 끓였는데, 아롱사태만으로 끓여서 그런지 맛이 별로 없었다.

퓨 이래서 양지를 쓰는 거구만.



오늘의 간식은 초코칩이 들어간 통밀쿠키.

남편이랑 드라마 보면서 야금야금 먹는 맛이 쏠쏠하다.


통밀 125g

소금 3-4g

설탕 40g

베이킹파우더 2g


다음 세가지를 잘 섞는다.

버터 60g (원래는 녹지 않은 상태에서 잘게 잘라 밀가루에 한참동안 문질러야 되는데, 그렇게 하면 번거로워서 자주 만들어 먹기 싫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녹여서 다른 두 액체들과 섞어 사용했다.)

메이플 시럽 60g

올리브유 10g


재료를 모두 섞어서 한 덩어리로 만든 다음, 오븐에 넣을 그릇에 얇게 편다.

초코칩 쿠키를 살짝 누르며 얹어준다.


냉동실에 30분간 넣어두었다가 칼로 바둑판 모양으로 잘라준다.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 그대로 넣고 30-40분을 굽는다. (두께에 따라 굽는 시간이 달라진다.)

색깔이 살짝 어두운 브라운이 되면 꺼내서 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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