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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Nov 22. 2023

사랑하지 않아서 아프다

고사리 파스타

나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나의 서비스를 원했던 게.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과외는 나에게 떠올릴 때마다 아픈 트라우마였다.


일단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당시 나는 일반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좀 힘들 정도로 저질 체력이었다.

한 시간 수업하면, 조금 지치고

그 후 한 시간 수업하면, 많이 피곤하고

그 후 한 시간 수업하면, 쉼이 정말 간절했다.

그리고 한 시간 더 수업하면, 호흡을 해도 시원하지가 않았고,

마지막 수업 한 시간이 끝나면, 몸 안의 어떤 것들의 균형이 깨지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너무 힘든 상태로 잠에 들면 잠을 깊이 못 잘 때도 많았고, 아침에 일어나도 여전히 피곤했다.

지친 상태로 계속 살아가는 게 지긋지긋했다.


"그거 수업 몇 시간 한 것 가지고...남들은 회사 가서 하루 종일도 일하는데."

회사 생활을 오래 했던 남편의 관점에서는 나의 힘겨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기저기 아파왔다. 매번 숨쉴 때마다 몸 안에서 그르렁 그르렁 하는 소리와 울림이 있었고 (숨은 계속 쉬어야 하니 깨어있는 내내 그 울림과 소리를 느끼고 들어야 했다.), 왼쪽 옆구리가 부어 있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입 안에 위산이 가득해졌고, 매일 양치할 때마다 피가 나왔고, 잇몸이 치과 의사 선생님이 으으 하며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많이 꺼졌다. 세수할 때 얼굴을 만져보면 너무 까칠해서 부지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 남편은 건강 염려증이라고 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점점 싫어졌다. 까매졌고, 두 볼은 푹 꺼져서 이상해 보였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어떻게 그렇게 급격하게 늙어버릴 수가 있냐며 걱정스러워했다.

친구에게 미소지어 보이며 "괜찮아. 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라고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괜찮지가 않았다.

그런 내 속도 모르고 남편은 자꾸만 두 손의 둘째 손가락을 펴서는 한 손은 위에서 내려오고, 한 손은 밑에서 올라가다가 두 손끝이 가운데서 만나는 제스쳐를 취했다. 나는 나이 들어가고, 자기는 점점 젊어져서 나중에는 우리가 동갑처럼 보일 거라는 뜻이었다. 나 마음 너무 힘든 것도 모르고 그런 농담을...

아아 한 대 때려줄까. 두 손에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두 눈에 눈물이 조금 고였지만, 마음을 꼬옥 누르고 최대한 점잖게 그런 농담은 좀 삼가달라고 부탁했다.

"내 여자. 예쁘기만 한걸~"

남편은 내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고, 남편의 말은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스스로 외모에 자신이 없어지자, 사춘기에 접어든 한 학생이 나보고 선생님은 주름도 많고 못생기셨어요 라고 예의에 벗어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 한마디를 던졌을 때 쿨하게 그건 너 생각이고 라고 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 말했다. 내 생각에도 이제는 조금은... 그렇다... 이새꺄


제주도에 살면서 과외를 했던 4년여의 시간 내내 이 생활에서 벗어나는 그 날만을 기다리면서 꾸역꾸역 살았다. 과외를 그만하게 되면 이제 그토록 지치는 일도 없을 거고 몸도 얼굴도 다시 회복될 거였다.

제주도를 떠나 대전으로 이사오면서 나는 드디어 과외에서 해방되었다. 어떻게 경제활동을 하면서 살아갈지에 대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과외를 또다시 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대전에 살면서 일년쯤 지나고 힘들었던 과외 생활에서 멀어지자, 조금씩 그 경험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가 있었다.

"내 인생은 왜 나를 과외로 이끌었을까?"


하나, 학부모와 학생들의 상처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나의 상처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둘, 과외를 해서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셋, 아침부터 오후 네시까지의 시간이 자유로웠다.

넷, 처음으로 내가 한 일에 인정을 받았다.

끝.

더 이상은 없었다.


과외를 해서 좋았던 점들을 꼽아보는 게 과외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굉장한 장점들이었음에도 나에게는 잘 와닿지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달이 더 지나자, 내가 지치고 상했던 게 과외를 많이 해서였다는 내 생각이 정말 맞는 건가? 라는 의문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정말 과외가 문제였던 걸까?

왜 톰 크루즈 님이나 장한나 님은 에너지가 넘치는 걸까? 분명 일의 양으로 따지면 내가 과외를 했던 것보다 몇 십배의 일을 하면서 사는 분들이었다. 그런데도 저 분들은 상하기는 커녕 빛이 나보였고 지쳐 있지도 않았다.

이상하다...


대전에 와서 집에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내가 만든 요리를 너무나 맛있어 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에게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졌다. 앉으나 서나 어떻게 만들면 더 맛있을까를 생각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들을 보고 공부도 했다. 요리에 노력을 들이니까 정말로 음식이 더 맛있어져서, 남편은 내가 만든 음식을 한 입 맛보고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야!" 하면서 기쁨의 제스처를 해보이기도 했다. 요리하는 게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 아침에 빵을 굽고, 샐러드를 만들고, 점심에 메인 디쉬를 만들고, 저녁에 파이나 쿠키를 굽고... 설거지 하고.

하루 종일 일을 하며 보냈던 하루의 끝에서 갑자기 머리 속에 알람의 징이 울렸다.


"어랏! 나 지금 안 피곤하다!!!!!!!!!"


정말이었다. 저질 체력 쟁이가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서서 음식을 만들고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지치는 느낌이라곤 한 톨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렇지, 그런지가 이미 꽤 되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랑은 에너지구나


남편을 사랑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나에게 힘이라는 형태로 되돌아왔다.

내가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어쩌면 무한한 에너지를 경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마음(사랑)으로 사는 거란다 라고 했던 엄마의 말이 이런 뜻이었을까.

사랑의 그 가장 큰 수혜자는 내가 사랑을 한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나 자신이었다.


요리와 마찬가지로, 내가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과외를 했다면 그걸 감당하고도 남았을 에너지가 나에게 돌아왔을 터였다. 사랑 없이 억지로 억지로 과외를 하니 나는 고갈되어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남편이 과외가 얼마나 힘든지 잘 몰라서 나의 고충을 공감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섭섭했는데, 정작 진실을 잘 몰랐던 건 남편이 아니라 나였다.


게다가 과외는 내가 능히 타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던 분야였다.

나에게 수업을 받으면서 수포자가 될 뻔했던 아이가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를 회복하고 수학에 재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수학에 원래 재능이 있었던 아이는 나와 공부하면서 학교에서 가장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기쁨이 과외하는 힘겨움보다 턱없이 적었다.

내가 그렇게 사랑에 인색했다.


내 인생은 왜 나를 과외로 이끌었을까?

나는 이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았다.


과외를 통해서 많은 학생들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 경험을 통해 내가 보고 싶었던 건 학생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정확히는, 사랑이 없었던 나의 마음.

그걸 나 자신에게 알려주려고 나는 과외를 했나보다.


======


오늘 점심에는 소고기 고사리 파스타를 만들었다.


소스.

다진 소고기에 소금 후추를 뿌려 익힌 다음

청주를 좀 부어 날리면서 볶고, 설탕을 살짝만 뿌려서 고기와 볶아준다.

거기에 다진 파와 마늘을 넣고 같이 볶는다.

코리앤더 씨를 좀 부셔서 섞어준다. (생략 가능)

데친 고사리를 넣고 같이 볶는다.

진간장을 프라이펜 바닥에서 좀 끓인 후 같이 볶아준다.

액젓도 조금만 넣어 주어도 좋다. (생략 가능)

들기름과 들깨 가루를 좀 넣고 약불에서 볶는다.


소금을 조금 넣은 물에 파스타 면을 익힌다.

파스타 면이 거의 익으면 프라이펜에 같이 넣고 면수(파스타를 익힌 물)를 부어 가면서 파스타 면이 소스와 잘 어우러지도록 한다.

마지막에 들기름과 들깨 가루를 충분히 넣고 약불에 섞어준다. (나는 들깨 가루에 너무 욕심을 부렸는지 남편이 너무 뻑뻑하다고 했다. 다음 번엔 오늘 넣은 거의 반만 넣자.)

다진 청량고추와 으깬 페퍼론치노를 충분히 넣어서 섞어준다.


음.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고급스럽게 맛있었다. 남편도 좋아했다.

그런데 남편이 좀 뻑뻑하다면서 중간에 실험을 해보겠다고 파스타에 올리브유를 들이부었다.

내가 그럴 때는 면수를 좀 넣어서 조절해야 된다고, 정 그러면 들기름을 좀 넣으라고 했는데도..


구수한 들깨 향의 고사리 파스타에 올리브유의 향이 섞이자, 이도 저도 아닌 것이 그만, 못 먹을 것이 되어 버렸다.

파스타가 맛있다고 좋아했던 딱 그만큼 속이 상했다.

실험을 하려면 조금만 따로 덜어서 해주지.. 내가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중간에 훅 망쳐 버리다니.

슬퍼서 눈물이 흐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물이 핑 돌고 코 끝이 약간 찡해졌다.


남편은 미안했는지 고기만이라도 건져 먹고는, 냉장고로 달려가 사과 한 알을 꺼내와 나에게 내밀며 미안하다고 해주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후 다시 다가와서 사과해 주었다.


남편이 진심을 느끼자 곧바로 마음이 좋아졌다.

오히려 나의 마음을 소중히 대해준 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엔 들깨 가루를 좀 덜 넣고 촉촉하게 만들어 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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